곽수빈
郭守斌1882. 10. 28 ~ 1951. 3. 31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고령청년회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5)
관련 사건
- · 파리장서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1995) 1882년 10월 28일 경상북도 고령군(高靈郡) 임천면(林泉面, 현 쌍림면) 월막동(月幕洞, 현 월막리) 현풍 곽씨 집성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현풍(玄風)이고, 자는 사언(士彦)이며, 호는 몽와(夢窩)이다. 곽송빈이라는 이명을 사용하였다. 곽치송(郭致崧)과 순천(順天) 박씨(朴氏)의 둘째아들로 태어났으나 숙부 곽치안(郭致安)의 양자로 입적하였다. 고령의 현풍 곽씨 집안은 조선 중기 이래 400여 년 동안 월막리에 살아온 명망 있는 재지사족(在地士族)이었다. 선조인 곽율(郭慄)은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문인으로,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왜적과 싸우다 순국하였고, 8대조 곽수강(郭壽岡)은 학덕이 출중해 사림의 추앙을 받아 매림서원(梅林書院)에 제향되었다. 최익현(崔益鉉) 등과 교유하며 일제의 조선 침략에 대비할 것을 주장하던 대구의 유학자 서찬규(徐贊奎)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곽종석(郭鍾錫)·김창숙(金昌淑) 등 유생들은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 중인 파리강화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청원하는 장문의 글을 보내기로 결의하고, 각 지역 유생들로부터 이를 지지하는 서명을 받기로 하였다. 서찬규 문하에서 동문수학한 서건수(徐建洙)와 함께 21번째로 청원서에 서명하였는데, 고령 출신 유생 가운데 처음으로 이름을 올려 지역 내 다른 유생들의 참여에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4월 2일 경북 성주의 독립 만세 운동으로 서명자의 한 사람이던 송회근(宋晦根)이 체포되면서 청원서 서명자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가 시작되었다. 이때 이른바 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었으나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6월 9일 석방되었다. 1920년대에는 고령 지역 청년 유지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고령청년회(高靈靑年會)에서 활동하였다. 중요 간부로 경제적인 지원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1925년에는 교육부 임원이 되어 노동 야학을 통한 문맹퇴치운동, 물산장려운동, 민립대학설립운동, 토론회·강연회 개최 등 실력 양성 운동과 관계된 사업과 업무를 수행하였다. 1938년 고령향교(高靈鄕校) 직원(直員)으로 재직하였다. 1942년 서간도 지역으로 건너가 항일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고 하는데, 상세한 활동은 확인되지 않으며 수토병(水土病)으로 2년 만에 귀국하였다. 고령군 쌍림면 월막리에 묘가 있으며, 2005년 공적을 기리는 추모비가 건립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하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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