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석
郭仁錫1881. 7. 26 ~ 1934. 1. 2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위친계(도란사)
- · 이팔사(二八社)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3)
관련 사건
- · 벌교면 만세세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3) 1881년 7월 26일 전라남도 순천군(順天郡) 동초면(東草面) 신기리(新基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것을 확인하고 동초면 신기리의 전평규(田平奎)와 함께 같은 마을의 안용갑(安鏞甲)·안응섭(安應燮)과 의논하여 동지 33명과 함께 표면상 친목을 도모하는 ‘위친계(爲親契)’를 만든 후 그 비밀 명칭을 ‘도란사(桃蘭社)’라 하였다. ‘도란’이란 명칭은 중국 한(漢) 나라의 유비·관우·장비 3명의 도원결의(桃園結義)와 진(秦) 나라의 뜻있는 문사(文士)들이 난정(蘭亭)에서 모임을 하던 옛일에서 뜻을 취한 것인데 대개 삶과 죽음을 같이하자는 의미였다. 도란사는 강정수(姜正秀)·김만득(金萬得)·김오현(金五鉉) 등 33명으로 구성되었다. 4월 3일 전평규가 위친계원 33명의 단결과 활동으로 일반 민중에게 독립 사상을 고취할 목적으로 김천근의 집으로 위친계원 29명을 소집하였을 때 위친계원들과 함께 그 취지에 찬동을 하여 도란사의 연계 조직 ‘이팔사(二八社)’의 결성에 참여하였다. 도란사의 행동 조직으로 결성된 ‘이팔사’에 위친계원 32명과 김규석(金奎錫)·안진영(安鎭榮) 등과 함께 구성원으로 활동하였다. 4월 8일 신기리 한흥조의 집에 위친계원 32명과 김규석·안진영 등과 함께 모여 4월 9일 보성군(寶城郡) 벌교면(筏橋面) 벌교리(筏橋里) 시장에서 장꾼들이 모이는 것을 기회로 삼아 독립 만세를 부르기로 결의하고 이를 서약서로 작성한 후 여기에 손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태극기를 만들고 ‘대한 독립기’라고 쓴 종이를 준비하였다. 4월 9일 위친계원과 함께 벌교리 강억서(姜臆西)의 음식점에서 모인 후 벌교면 장좌리(長佐里)의 아랫장에 도착하여 ‘대한독립기’를 흔들며 조선 독립 만세를 외쳤고, 장꾼들도 이에 호응하여 만세 시위를 고창하였다. 이날의 만세 시위에 가담한 혐의로 13명의 동초면 신기리 도란사, 이팔사 대원들과 함께 체포되어 1919년 5월 2일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윤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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