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의성
桂義成1924. 1. 3 ~ 1982. 10. 6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한국광복군 제2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24년 1월 3일 평안북도 선천(宣川)에서 태어났다. 1943년 10월 20일에 공포된 일제의 ‘조선인학도육군특별지원병제’에 따라 징집되어, 1944년 1월 20일 일본군에 입대하였다. 같은 해 2월경 일본군으로서 중국 전선에 투입, 산시성(山西省) 윈청(運城)에 배치되어 복무하였다. 군 복무 중 1944년 7월 조국의 독립을 갈망하며, 일본군 부대를 탈출하였다. 탈출 후 1944년 9월 한국광복군 간부훈련반을 졸업하고 본부 위병분대장으로 근무하였으며, 1944년 10월에는 산시성 치우린현(秋林縣) 커난풔(克難坡)에서 공작 활동을 하던 광복군 제2지대원 이순승(李淳承)에게 포섭되어 송창석(宋昌錫)·백준기(白俊基) 등과 함께 광복군 제2지대 제3구대에 입대하였다. 입대 후 제2지대장 이범석(李範奭)과 제3구대장 노복선의 지휘하에 산시성, 허난성(河南省), 허베이성(河北省) 일대에서 한국인 청년 및 사병을 모집하여 광복군의 일원으로 충원케 하는 초모 활동과 일본군의 정보를 수집하고, 일본군 후방을 교란하는 작전을 수행하였다. 1945년 5월, 미 전략첩보국(OSS, Office of Strategic Services)과 한국광복군의 합작작전인 독수리 작전(Eagle Project) 특수훈련에 참여하였다. 1기로 선발되어 훈련소가 있는 산시성(陝西省) 두취(杜曲)로 가서 12주(1945.5.11~1945.8.4)에 걸쳐 훈련과 교육을 받았다. 이때 OSS 특수훈련반은 무전반과 정보·파괴반 두 반으로 나누어 훈련을 실시하였는데 정보·파괴반에 편성되어 국내에 침투하여 군사시설을 파괴하고, 쿠데타 감행, 게릴라 작전 등 특수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훈련을 받았다. 1기생 50명 중 훈련을 마친 대원은 모두 38명이었다. OSS특수훈련에 참여하였던 이들의 증언에 의하면, 조국 광복을 이루겠다는 염원으로 매일 8시간의 고된 훈련도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한다. 1945년 8월 4일, OSS 특수훈련을 마친 대원과 기타 지대원을 중심으로 국내 침투 작전을 수행할 국내 정진군을 편성하였다. 장덕기(張德祺, 무전반)·장철(張鐵, 정보·파괴반)과 함께 국내 정진군 제1지구 평안도반 제1조에 편성되었다. 평안도반에 편성된 이유는 평안도 출신으로서 작전 수행에 유리하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었다. 국내에 침투하여 작전 수행을 기다리다가 8월 15일 일본이 패망하면서 작전은 끝내 실행되지 못하였다. 광복 이후 1946년 6월 3일 광복군 500여 명과 함께 인천항을 통해 귀환하였다. 1971년 경기도 벽제에 있는 일본인 위령탑에 불을 지르기도 하는 등 강한 반일 정서를 드러내기도 하였다. 1982년 10월 6일, 경기도 김포군 양촌면 누산4리 자택에서 생활고를 비관한 끝에 자결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여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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