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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응대

高膺大

1890. 7. 28 ~ 1972.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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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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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강동(江東)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강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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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국민회 국민향촌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0년 7월 28일 평안남도 강동군(江東郡) 구지면(區池面) 연리(蓮里)에서 태어났다. 연리교회에 다니는 기독교 신자였다. 1919년 구지면 연리에서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하위 조직인 국민향촌회(國民鄕村會)를 조직하고 부회장이 되어 이 일대에서 독립운동을 펼쳤다. 대한국민회는 1919년 평양 지역의 장로교 교인 박승명(朴承明)·김성탁(金聖鐸)·박인관(朴仁寬)·박정익(朴禎翌)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단체로, 평안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대한국민회는 국민총회(國民總會) 아래 군회(郡會)를 두고, 군회 하위 조직으로 향촌회(鄕村會)를 두었다. 마을 단위로 조직된 향촌회는 20여 명으로 구성되었다. 대한국민회는 초기에 독립적 활동을 펼치다가 조직 확장 과정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접촉한 뒤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지원 단체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활동 방향은 독립운동 자금 모집과 독립사상 고취에 중점을 두었다. 대한국민회 총무였던 박승명의 권유로 구지면 연리에서 대한국민회 산하 국민향촌회를 결성하고, 부회장이 되었다. 회장 고적희(高迪熙), 회계 이기옥(李基玉), 그 외 간부진으로 유대붕(劉大鵬)·이치건(李致健)·김병양(金炳洋)·정상목(鄭相穆)이 있었다. 이들은 1919년 음력 7월 같은 마을 김정욱(金鼎昱) 집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보냈으며, 국민향촌회 회원의 입회금 역시 임시정부에 보내는 등 독립운동 자금 모집을 중심으로 활동을 펼쳤다. 또한, 『독립신문』을 국민향촌회 회원 및 민간에 배포하였다. 평남 지역 독립운동과 국민향촌회 활동을 염탐하고 있던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1920년 11월 17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정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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