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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환

姜明煥

1888. 8. 8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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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강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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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단천(端川)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단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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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6) 1888년 8월 8일 함경남도 단천군(端川郡) 파도면(波道面) 외문리(外門里)에서 출생하였다. 1915년 (음)8월 단천군 내 기독교계 인사인 최석희(崔錫熙)·이홍용(李洪容)의 권유에 따라 일제의 강제 병합을 거부하고 국권 회복의 뜻을 지닌 동지를 규합하여 자립단을 조직하기로 하였다. 자립단은 독립을 위해 금전을 갹출하여 상업을 경영하고 식리(殖利)를 꾀하는 한편, 어린 자제들에게 민족교육을 시행함으로써 유사시를 준비하기 위한 비밀결사였다. 이후 방주익(方周翼) 등 동지를 규합하여 그해 음력 9월 자립단 조직에 관한 협의를 시작하여 단원은 ‘결사(決死)로 구한국을 광복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라는 취지의 맹약서를 작성하였다. 이후 수차례 자립단 결성을 위한 모임을 가진 뒤 (음)11월 5일 단천군 수하면(水下面) 하농리(下農里) 장암촌(長岩村) 서당에서 비밀 모임을 갖고 자립단을 결성하였다. 단장 방주익, 부단장 이임배(李林培), 총무 박승혁(朴承赫), 회계원 심항기(沈恒基)와 함께 동지 모집원으로 활동하다가 1916년 3월 일본 헌병대에 조직이 발각되어 단원 18명과 함께 체포되었다. 1916년 3월 14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이에 불복하여 경성복심법원에 항소하였으나, 그해 4월 17일 항소가 기각되어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겪고 1917년 10월 17일 만기 출옥하였다. 1919년 7월 조덕윤(趙德潤) 등과 함께 창바이부(長白府)로 가서 대한독립군비단(이하 군비단) 군자금 모집원인 김학락(金學洛)의 권유를 받고 동단에 가입하였다. 군비단은 1919년 5월경 백두 산록 서남 지역 압록강변에 위치한 창바이현(長白縣)에서 결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군비단은 함경도의 항일 인사들이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항일운동을 위해 함경도와 마주한 창바이현으로 근거지를 옮겨 조직한 독립군단이었다. 창립 초기에 조직적 체계를 갖추지 못하다가 그해 10월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조직 재정비를 위해 이태걸(李泰杰) 등 7명을 파견하면서 체계적인 독립군단이 되었다. 이때 단장은 이태걸, 부단장은 김동준(金東俊) 등이었다. 함경도 출신과 임시정부를 지지하던 군비단이 중심이 되어 함경도에 임시정부의 임시 함남교통사무국을 설치하였다. 임시교통사무국은 임시정부에서 독립 사업을 선전하고 각지의 독립운동 단체나 개인들과 통신·연락을 목적으로 국내 각지에 설치한 것이었다. 임시 함남교통사무국은 삼수·갑산·단천·북청 등지에 지국을 비밀리에 설치하였고, 북청지국 사무국 참사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한때 정보를 입수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취조를 당하였으나 무혐의로 풀려났다. 군비단 단원이자 임시정부의 임시 교통국원으로 활동하던 중 1921년 3월 18일 군비단원 김택진(金澤津)이 단천군 이중면(利中面) 하전리(荷田里) 오주호(吳周鎬) 집에 잠복해 있다가 단천경찰서 경찰에게 체포되면서 함께 검거되었다. 1921년 7월 10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다가 1922년 8월 26일 가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윤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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