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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석

姜好錫

1894. 3. 15 ~ 195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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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강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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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상주(尙州)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상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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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1) 1894년 3월 15일 경상북도 상주군(尙州郡) 상주읍(尙州邑) 신봉동(新鳳洞)에서 강신종(姜信宗)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호는 덕재(德載)이다. 일명 강남호(姜南鎬)라고도 하였다. 강신종이 일찍부터 안동의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과 교유한 인연으로 이상룡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907년에는 이상룡의 딸과 혼인하였다. 1911년 1월 5일 이상룡이 일족을 이끌고 안동에서 출발하여 상주·추풍령·서울 등지를 거쳐 1월 27일 압록강을 건너자, 아버지와 함께 장인을 뒤따라 서간도로 망명하여 퉁허현(通化縣) 하니허(蛤泥河)에 정착하였다. 1912년 부민단(扶民團)에 가입하였고, 1913년 12월 귀화하여 중국 국적을 취득하였다. 그리고 이상룡을 비롯한 망명 인사들이 추진하던 서간도 독립운동 기지 건설에 참여하는 한편, 한국 교민의 정착을 위해 노력하였다. 1919년 정월 이상룡과 함께 지린성(吉林省) 화뎬현(樺甸縣)으로 이주하였다. 1919년 3·1운동 이후 부민단을 중심으로 한 남만주 지역 민족단체 대표들은 독립 전쟁의 총본영으로 군정부(軍政府)를 조직하는 한편, 동포들의 자치기관으로 한족회(韓族會)를 결성하였다. 그리고 그해 11월 군정부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산하의 남만주 지역 군사기관인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로 개편하였다. 이때 이상룡은 군정부의 총재(總裁)와 서로군정서의 초대 독판(督辦)으로 추대되었다. 이즈음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제1기생으로 졸업한 뒤, 서로군정서에 참여하여 성준용(成駿用) 등과 함께 안투현(安圖縣) 내도산(內島山)으로 파견되어 독립군의 병영지(兵營地)를 물색하기도 하였다. 1920년 청산리대첩과 간도참변(間島慘變) 이후, 1922년 1월 한족회·서로군정서·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등이 과도기적 연합 단체인 대한통군부(大韓統軍府)를 결성하자 이에 참여하였다. 같은 해 8월 30일 민정과 군정을 겸한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가 발족하자 여기에 참여하였다. 1924년 11월 4일 지린성(吉林省) 판스현(盤石縣)에서 한족노동당(韓族勞動黨)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김응섭(金應燮)·이광민(李光民) 등과 함께 발기인으로 참여하였으며, 1924년 11월 24일 정의부(正義府) 창립에 참여하였다. 1926년 10월 지린성 판스현에서 개최된 한족노동당의 전당원대표회의(全黨員代表會議)에서 검사위원(檢査委員)으로 선출되었다. 한족노동당은 1928년 2월 재만농민동맹(在滿農民同盟)으로 개편될 때까지 민족의 단결과 실력을 함양하고 세계의 대세에 순응하며 광복 사업에 한 사람이라도 더 참여시키고자 발기한 독립운동 단체였다. 특히 노동자를 위한 단체를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계몽적인 성격이 농후한 독립운동 단체로 민족주의 운동 계열에 포함되는 경향을 보였다. 1950년 11월 6·25전쟁 중 모든 가족과 함께 화를 입고 별세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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