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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숙

康景淑

1875 ~ 1943.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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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강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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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용강(龍岡)미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용강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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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5) 1875년경 평안남도 용강군(龍岡郡) 삼화면(三和面)에서 태어났다. 자료에 따라 강경숙(康敬叔)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1905년 4월 1,033명의 한인과 함께 국제적 사기극에 속아 멕시코로 노예 이민을 떠났다. 그해 5월 멕시코에 도착하여 4년간 강제 노동에 시달렸다. 1909년 계약 기간이 만료된 뒤 그해 5월 미주 국민회(國民會) 산하에 멕시코 메리다(Merida)지방회가 조직되자, 이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26년부터 1927년까지 멕시코 프론테라(Frontera)지방회 대의원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1928년 동 지방회가 알바로 오부리곤(Alvaro Obregon)지방회로 개칭되자, 재무로 선임되었다. 1929년부터 1931년까지 동 지방회 회장을 연임하며 박춘삼(朴春三)·김태진(金泰鎭)·홍순우 등과 함께 멕시코 한인들의 독립운동 의지를 고취하였다. 1936년에는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대한인국민회 총회관 건축을 위한 오부리곤 지역위원으로 선정되었다. 그해 5월 대한인국민회 총회에서 조직을 강화하기 위해 종전 회장제를 위원제도로 개편하자, 멕시코 각 지방회도 지방중앙위원회, 지방상무위원회, 지방감찰위원 제도로 바뀌었다. 1937년부터 1939년까지 오부리곤지방회 집행위원장으로서 하오성(河五星)·문병찬·서정환·정태봉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특히 1938년 4월 11일에는 집행위원장 자격으로 ‘안도산선생 추도회’를 개최하여 독립운동가 추모 사업과 함께 멕시코 한인들의 독립 의식을 고취하였다. 그러나 1940년 오부리곤 지방 거주 한인의 수가 감소하자, 지방회 대신 통신처를 설치하고 운영하였다. 이에 1940년부터 1942년까지 통신원으로 활동하다가 1943년 6월 19일 사망하였다. 1921년부터 1938년까지 의무금, 인구세, 대일전선통일동맹후원금, 삼일기념금, 항일동정금 등의 명목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후원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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