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내영
姜來永1884. 11. 18 ~ 1974. 7. 2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7)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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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1997) 1884년 11월 18일에 경상북도 문경군(聞慶郡)에서 태어났다. 주소는 경북 문경시 영순면(永順面) 이목리(梨木里)이며,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자는 낙서(洛瑞)이며, 이명은 강영석(姜永錫)이다. 성장 배경이나 가족관계, 의병에 참여하게 된 계기 등은 자료에 나타나 있지 않다. 1896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반대하여 의병을 일으킨 이강년(李康秊)이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군대해산 조치에 분개하며 제천에서 의병을 일으킬 때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을미의병 당시 고향인 문경에서 봉기한 이강년이 안동관찰사 김석중(金奭中)을 처단하고 제천의 호좌의진에 합세하여 유인석(柳麟錫)과 함께 명성을 떨쳤던 일은 이강년과 고향이 같은 많은 이가 다시 거의한 이강년 의병부대에 참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같은 진주 강씨이자 근처에 거주하던 강병욱(姜炳旭)과 함께 이강년 의병부대를 지원하는 등 근방의 많은 사람과 더불어 이강년의 거의에 참여하였다. 1896년 거의 당시 자신의 휘하에 있던 윤기영(尹基榮)이 해산된 원주진위대(原州鎭衛隊)의 무기를 받아 군사를 모았다는 소식을 들은 이강년은 원주로 가서 의병부대와 함께 제천으로 남진하였다. 제천 천남(泉南)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승리한 의병부대는 영월 주천으로 근거지를 옮겨 지휘 체계를 재정비하였다. 도창의대장(都倡義大將)으로 추대된 이강년은 도총독장에 이만원(李萬源), 중군장에 김상태(金尙台)를 임명하였다. 의병부대에서 장임직(將任職)과 참모부(參謀部)는 의병을 이끄는 지도층의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종사부(從事部)에 소속된 종사(從事)는 종군하면서 실제로 전투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좌종사부(坐從事部)에 소속된 좌종사(坐從事)는 각 거주지에 거주하면서 그 지역 지리에 밝아 일본군에 대한 정보를 의병부대에 제공하고 군량을 대주는 등 여러 방면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강년 의진에서 좌종사를 맡아 활동하였다. 이후 이강년 부대는 충청·강원·경북 북부 일대를 돌아다니며 지형과 산세를 이용하여 유격전을 펼쳤다. 관군과 일본군을 동시에 상대하던 을미의병 때와는 달리 일본 정규군을 주로 상대해야 했던 이 시기에는 근거지를 자주 옮기며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여 일본군의 약점을 공략하고자 하였다. 의병 항쟁의 전술 양상이 변화하면서 좌종사부의 역할이 두드러졌다. 근거지를 옮기며 유격전을 전개함에 따라, 이동하는 각 지역의 사람들로부터 군수 물자를 지원받는 일이 장기전으로 항쟁을 이끄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또한 험악한 산세를 지리적인 이점으로 이용하는 전략을 펼치는 데 그 지역의 지리에 밝은 지역 유지 및 지역민들의 참여는 필수 요건이었다. 이강년은 1908년 7월 2일 청풍(淸風)에서 일본군의 탄환에 맞은 뒤 붙잡혀 사형을 선고받고 10월 순국하였다. 이 시기의 구체적인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문경 출신인 이강년이 문경을 격전지 중 하나로 삼고 1907년 9월 조령전투(鳥嶺戰鬪), 갈평전투(葛坪戰鬪), 적성전투(赤城戰鬪) 등을 치렀다는 점에서 좌종사로서 문경을 중심으로 이강년 의병부대의 의병 활동을 지원한 것으로 짐작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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