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강대근

姜大根

1891. 2. 23 ~ 1957. 3. 10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강대근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북 영일(迎日)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입암전투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1년 2월 23일 경상북도 영일군(迎日郡) 죽장면(竹長面, 현 포항시 북구 죽장면) 상옥리(上玉里)에서 출생하였다. 자는 성구(聖九), 본관은 진주(晋州), 이명은 대삼(大參)이라고도 하였다. 성장하면서 포수(砲手)로서 활을 잘 쏘아 선사지재(善射之才)로 알려졌다.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면서 나라가 송두리째 무너져가는 위기 속에서 고종의 밀조(密詔)를 받은 정환직(鄭煥直)이 장남 정용기(鄭鏞基)에게 영남(嶺南)으로 내려가 의병을 일으키도록 지시하였다. 정용기는 고향인 경북 영천(永川)에서 이한구(李韓久)·손영각(孫永珏) 등과 더불어 1906년 3월 ‘산남의진(山南義陣)’을 일으켰다. 의병부대의 조직으로는 본부에 대장 아래 참모장·중군장·소모장·선봉장·후봉장·좌영장·우영장·도총장·연습장 등 여러 부서를 두었는데, 이때 포수 출신으로서 대장의 본영(本營)에 참여하였던 것 같다. 의병부대는 1906년 (음)4월 28일 일본군에 패한 신돌석 의병부대를 돕고자 영해(寧海)로 진군하다가 현재의 포항시 북구 신광면(神光面) 우각(牛角)에서 ‘아버지 정환직이 구속되었으니 의논할 일이 있다’라는 경주진위대(慶州鎭衛隊)의 연락을 받았다. 이에 놀란 정용기 대장이 홀로 경주로 갔다가 구속되고 말았다. 의병부대는 중군장 이한구에게 맡겨졌으나 1906년 7월 하순경 해산되었다. 1906년 9월 정환직의 주선으로 풀려난 정용기는 이듬해 4월 북동대산(北東大山)에서 재기하였다. 1907년 7월부터 본격적인 진군을 시작하면서 관동(關東), 곧 강릉(江陵)으로 북상할 길을 찾았다. 그러나 길목마다 일본군이 가로막고 있었다. 의병부대는 여러 지역으로 나누어 내보내고 본영 100여 명은 10월 6일 영일군 죽장면 매현(梅峴)으로 들어가 주둔하였다. 이튿날 7일 저녁 일본군이 죽장면 입암(立巖)으로 들어온다는 정보를 획득하고 연습장 우재룡(禹在龍), 우포장 김일언(金一彦), 후봉장 이세기(李世紀)를 세 방향으로 내보내 일본군의 퇴로를 막도록 하고, 본영은 10월 8일 새벽에 일본군을 공격하기로 계획하였다. 10월 7일 오후 9시 30분 이세기 부대가 입암리를 지나다가 원촌(院村) 마을에서 일본군 몇 명이 식사 준비를 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성급하게 공격을 하였다가 매복해 있던 일본군의 집중 공격을 받아 패하여 흩어지고 말았다. 이 소식에 놀란 본영은 죽장면 입암으로 진격하였다. 10월 8일 새벽 원촌마을에 도착하였으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일본군의 맹렬한 공격을 받았다. 약 2시간 동안 격전을 치렀지만, 대장 정용기와 중군장 이한구 등 여러 장령과 병사들이 전사하고, 또 부상을 당하였다. 이때 중상을 입고 간신히 피신한 후 은신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권영배⋮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