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성찬
孔成瓚1877 ~ 1909. 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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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1877년경 전라남도 구례군(求禮郡) 마산면(馬山面) 황둔(黃屯) 마을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곡부(曲阜)이다. 상업에 종사하다가 의병에 투신하였다. 1907년 한일신협약(정미7조약)과 함께 고종이 강제로 퇴위하고 군대까지 해산당하는 등 국권 상실이 현실화하자 전국에서 항일 의병이 일어나 국권 회복 운동을 전개하였다. 전남에서는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제자들이 앞장서서 의병을 일으켰다. 기우만(奇宇萬)·기삼연(奇參衍) 등이 주도하여 복수토적(復讐討賊)에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을 규합하였다. 특히 기삼연은 전라도 서부 지역 의병부대를 모아 호남창의회맹소를 결성하여 대대적인 항일 투쟁을 펼쳤다. 호남창의회맹소는 기삼연을 맹주로 추대한 뒤 1907년 10월 말부터 다음 해 1월 말까지 치열한 항일 전투를 전개해 갔다. 이들은 주로 장성·영광·담양·고창·함평·무장 등 전라도 서부 지역을 활동 무대로 하여 각 읍에 상주한 순사주재소와 우편취급소 그리고 거류 일본인들을 습격하였다. 하지만 일제의 대대적인 진압 작전으로 인해 기삼연이 체포되어 순국한 뒤 여러 의병부대로 분진하여 소규모 유격전을 펼쳐갔다. 대표적으로 심남일(沈南一) 의병부대와 안규홍(安圭洪)의 ‘안담살이 의병’은 주로 화순·곡성·보성·장성·장흥·순천 등 전남 동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서로 연대하며 항일 전투를 전개하였다. 지리산을 중심으로 한 구례·남원 지역에서는 1908년 2월경 기삼연 순국 이후 김성구(金聖九)가 독자적인 의병부대를 결성하여 유격전을 전개해갔다. 이때 김성구 의병부대의 부장(副將)으로서 수십 명의 동료를 이끌고 전북 남원·전남 구례·옥과·순천 일대를 돌아다니며 지형지물을 이용한 항일 유격전을 펼쳤다. 1908년 11월에는 전남 곡성에서 일본 경찰과 교전하였으며, 1909년 2월 26일에는 동료인 임세묵(林世黙) 등 10여 명과 함께 남원군 두동방(豆洞坊)에 사는 양극중(梁極仲)의 집을 습격하여 군자금을 징수하였다. 또한, 1909년 3월 1일에는 남원군 수지방(水旨坊)의 박해창(朴海昌)의 집을 공격하여 군자금을 징수하는 등 주로 몇몇 의병들과 함께 군자금 및 군수품 보급에 주력하였다. 1909년 4월경 일본군의 추격을 받아 동료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1909년 5월 7일 공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임세묵과 함께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항고하였으나 동년 8월 17일 대구공소원과 9월 7일 대심원에서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임세묵과 함께 형이 집행되어 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홍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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