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회수
具會守1880. 8. 9 ~ 1950. 11. 1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산남의진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7)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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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07) 1880년 8월 9일 경상북도 영일군(迎日郡) 죽장면(竹長面) 가사리(佳士里, 현재의 포항시 북구 죽장면 가사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능성(綾城)이며, 자는 형옥(亨玉)이다. 문의공(文懿公) 팔곡(八谷) 구사맹(具思孟)의 13세손이다. 죽장면 가사리는 보현산(普賢山)과 동대산(東大山) 사이에 위치하여 포수들이 많이 찾는 곳이어서 의병 진영(陣營)의 소모종사(召募從事)들이 이곳을 자주 왕래하며 병사들을 모집하였다. 이때 소모요인(召募要人)과 포수들 사이의 연락을 취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 때문에 그의 집은 소모요인과 포수들이 자주 모이는 곳으로 이용되었다. 이 과정에서 산남의진(山南義陣) 형성에 큰 역할을 하였다. 산남의진은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되면서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고종의 밀조(密詔)를 받은 시종관(侍從官) 정환직(鄭煥直)의 지시로 맏아들 정용기(鄭鏞基)가 조직한 의병 조직이다. 1905년 12월 정용기는 고향인 경북 영천(永川)에서 이한구(李韓久)·손영각(孫永珏)·정순기(鄭純基) 등과 의논하여 영천창의소(永川倡義所)를 마련하고 각지로 소모요인들을 파견하여 의병을 모집하였다. 1906년 3월 정용기는 의병을 결성하고 진호(陣號)를 산남의진이라 하였다. 이때 의병을 모으는 일과 의병부대를 결성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였을 뿐 아니라 자금과 의류 등을 후원하여 초기 의병부대 형성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정용기 대장 휘하에서 참모장(參謀長)이 된 손영각이 바로 장인(丈人)이다. 1907년 10월 정환직이 대장에 올라 의병진을 재편성할 때 영덕(盈德) 지역에서 병사를 모집해 들어와 본영 도총장(都摠將)에 오른 구한서(具漢書)는 종숙(從叔)이다. 영덕·영해(寧海) 방면에서 종숙을 도와 모병의 책임을 맡아 활동하였다. 1907년 12월 정환직 대장이 순국한 뒤 은신하였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200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권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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