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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경대

權景大

1876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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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권경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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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성주(星州)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성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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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5) 1876년 경상북도 성주군(星州郡) 가천면(伽川面) 오리동(梧里洞)에서 태어났다. 나무를 굽는 탄소업(炭燒業)에 종사하였다. 1908년 5월부터 9월까지 고향인 경북 성주와 경남 합천(陜川), 거창(居昌) 등지에서 소규모 의병을 이끌고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일제는 1907년 7월 헤이그특사 파견을 빌미로 광무황제(고종)를 강제 퇴위시키고 한국의 주권을 완전히 강탈하는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대한제국 군대마저 해산시킴으로써 대한제국의 마지막 독립 의지를 꺾어버리려 하였다. 이에 무장 해제당한 대한제국의 군인을 중심으로 각지의 의병들은 재차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기록으로 확인되지는 않지만, 이 무렵부터 의병에 참가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비록 소규모 부대였지만 1908년 중반에 부대장이 되어 의병부대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1908년을 전후하여 경남 합천과 거창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금하며 의병부대를 이끌었다. 주로 활동한 합천과 거창은 고향인 성주 가천면 일대에서 가야산을 사이에 두고 인접한 곳이다. 따라서 고향과 인접한 가야산을 거점으로 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비록 이곳에서의 대대적인 의병부대의 활동이나 전투는 드러나지 않지만 경북 문경(聞慶)의 이강년(李康年) 의병부대에 소속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부대원인 권성삼(權聖三)이 이강년 의병부대의 병사로 활동한 기록이 남아 있고, 이강년 의병부대에는 소백산맥 일대의 40여 의병부대가 참여하였기 때문이다. 1908년 7월부터 9월까지 부대원 권성삼과 오경화(吳敬化), 이화집(李化執) 등 8~9명과 함께 화승총을 휴대하고 성주와 합천·거창 일대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8년 7월 8일 부대원들과 함께 총을 휴대하고 합천 숭산면(崇山面) 수전동(秀田洞) 문진사(文進士)의 집에 잠입하여 군수품 명목으로 30관(貫)을 요구한 후 군자금을 상납받았다. 이후 1908년 8월 31일 권성삼 등과 함께 다시 성주의 청파면(靑坡面) 우수동(牛首洞)에 거주하는 손선달(孫先達)의 집에 찾아가 군수품 명목으로 한국 돈 9관 300문을 상납받았다. 그러나 군자금 모금 활동은 곧 일본군에 의해 발각되어 9월 4일에 부대원 권성삼, 오경화, 이화집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1908년 9월 30일에 대구지방재판소에서 1심 재판을 받고 이른바 강도 및 폭동의 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항소하였으나 1908년 10월 31일 대구공소원(大丘公訴院)에서 기각되어 종신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그러나 1912년 징역 12년으로 감형되었고, 1914년에는 징역 9년, 1915년 11월 10일 징역이 8년 2개월로 최종 감형되면서 석방된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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