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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규섭

權奎燮

1883 ~ 1907.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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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권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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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천(永川)의병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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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산남의진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83년경 경상북도 영천군(永川郡) 화남면(華南面) 대천리(大川里)에서 아버지 권영식(權英植)과 어머니 경주 최씨慶州崔氏 사이에서 태어난 3형제 중 장남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인숙(仁俶)이다. 1906년 3월 영천에서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여하여 좌영장(左營將)으로 활동하였다. 산남의진은 동엄(東广) 정환직(鄭煥直)이 고종의 밀지를 받고 그 아들 단오(丹吾) 정용기(鄭龍基)를 시켜 결성한 의병부대다. 1906년 4월 28일 창의장 정용기가 경주진위대(慶州鎭衛隊) 참령(參領) 신석호(申錫鎬)의 간계에 속아 체포되었다가 1907년 4월 재기하자 영천군 신녕(新寧)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산남의진에 참여하여 좌영장(左營將)이 되었다. 같은 해 8월 산남의진은 13도창의군의 서울진공작전에 참여하려고 9월 초순 관동(關東)으로 북상할 계획을 세웠다. 이에 따라 정용기는 8월 29일 본진 선발대 100여 명을 거느리고 경북 영일군(迎日郡) 죽장면(竹長面) 매현(梅峴)으로 들어가 진을 쳤다. 이날 오후 4시경 추격하는 일본군이 청송(靑松)에서 죽장으로 이동한다는 척후(斥候)의 보고를 받았다. 정용기는 휘하의 장령 우재룡(禹在龍)·김일언(金一彦)·이세기(李世紀) 등에게 각기 1대씩을 이끌고 적의 길목을 차단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정용기는 9월 2일 새벽 입암을 공격하여 적의 퇴로를 차단하고 적을 섬멸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정찰을 나갔던 이세기 부대가 9월 1일 밤 공격을 감행하다가 도리어 잠복하고 있던 일본군 영천수비대의 역습을 받고 패배하였다. 이에 정용기가 이끄는 본진과 함께 입암동으로 출동하여 이튿날 새벽까지 격전을 벌이다 순국하였다. 이른바 ‘입암전투(立巖戰鬪)’였다. 이 전투에서 전사한 의병은 대장 정용기를 비롯하여 중군장 이한구(李韓久), 참모장 손영각(孫永珏) 등 핵심 장령과 병사 등 모두 19명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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