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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홍

權基泓

미상 ~ 1907.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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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권기홍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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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의병

포상 정보

  • · 애국장(1999)

관련 사건

  • · 대한제국군
  • · 군대해산 시가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9) 출생 연도 및 출생 지역은 현재까지 전해진 자료가 없어 확인할 수 없다. 대한제국 시위대(侍衛隊)의 위관(尉官)으로 재직하던 중 일제의 강제 군대해산에 항거하였다. 1907년 헤이그특사를 빌미로 광무황제(고종)를 강제 퇴위시킨 일제는 그해 7월 24일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체결하였다. 정미7조약의 부속 밀약은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 있었고, 일제는 이에 따라 주한 일본군의 기존 병력에 제12여단을 증파하고, 총기 6만 정을 보급하였다. 이와 같은 준비 과정을 마친 뒤 순종으로 하여금 7월 31일 「군대해산조칙(軍隊解散詔勅)」을 반포하게 하였다. 일제는 8월 1일 군대해산의 내용을 모르던 일반 사병들을 도수연습(徒手練習)을 한다는 명령으로 훈련원(訓鍊院)에 집합시켜 강제로 해산하였다. 군대해산을 감지한 시위대 제1연대 제1대대는 무장 해제를 거부하고, 대대장 박승환(朴昇煥)은 강제 해산에 항거해 자결하였다. 제2연대는 훈련원으로 향하다 박승환의 자결 소식을 듣고, 남대문과 서소문 일대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제2연대 제1대대 참위 남상덕(南相悳)이 이끈 대한제국군은 일본군 대위 가지하라(梶原)를 비롯해 일본군 300여 명을 사살하는 등의 성과를 올리지만 기관포(機關砲)를 앞세운 일본의 공격에 결국 남상덕은 전사하였다. 남상덕의 지휘 아래 전투에 참가한 것으로 추정되며, 전투 과정에서 탄환을 맞고 본가로 이송되었으나 사망하였다. 이들의 전투는 지방의 진위대(鎭衛隊) 해산을 늦추고, 의병 활동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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