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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중

權相中

1882. 12. 1 ~ 1929.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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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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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상주(尙州)의병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상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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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82년 12월 1일 경상북도 상주군(尙州郡) 내북면(內北面) 창산리(昌山里, 현 상주시 초산동)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권석출(權石出)이라고도 하였다. 1910년 당시 직업은 잡화상(雜貨商)이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래 고종의 강제 퇴위, 한일신협약(정미칠조약) 강제 체결, 한국군 강제 해산 등과 같은 일제의 침략적 책동에 항거하여 전국적으로 의병 항쟁이 고조되었다. 이때 1908년 서종락(徐鍾洛)이 이끄는 산남의진(山南義陣)의 청송지대(靑松支隊)에 들어가 활동하다가 다시 임용상(林龍相)의 청도(淸道) 용문산(雲門山) 지대로 옮겨가 활동하였다. 청송은 영천(永川)과 함께 산남의진의 발상지이자 활동의 중심지였다. 1908년 3월 최세윤(崔世允) 대장이 각 지역 책임자를 임명하여 의병을 지대별로 편성하자 핵심 장령이면서 청송 출신인 서종락은 청송 동부 지역 지대를 맡았다. 이때 지대장(支隊將)을 따라 참여하여 함께 활동하였다. 서종락은 1906년 3월 산남의진이 처음 결성될 때 청송 지역에서 군사를 모아 입진하였고, 의병부대의 후봉장(後鋒將)에 이어 선봉장(先鋒將)을 맡아 활동하였다. 1909년 (음)11월 25일 임용상(林龍相) 휘하의 송남면(宋南面) 등과 함께 청송군 현남면(縣南面) 낙곡동(藥谷洞, 현 청송군 현서면 수락리) 윤덕동(尹德洞)의 집으로 가서 군자금 모집에 협조해 달라고 요청하였으나 응하지 않자 복부에 자상을 입히고 10냥을 징수하였다. 임용상은 임중호(林中虎)·임병오(林炳五)라고도 하였는데, 청송 출신으로 산남의진의 좌포장(左砲將)을 지냈으며, 최세윤 대장 휘하에서는 청도 운문산 지대를 이끌다가 일본군에게 잡혔다. 1909년 9월 13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징역 3년 형을 선고받았으나 1년 만에 풀려났다. 1910년 봄 병사들과 함께 청송 보현산(普賢山)에서 임용상을 대장으로 추대하고 일본군에 대항하는 유격대를 조직하였다. 1910년 5월 임용상 대장과 함께 청송군 일본군 분파소(分派所)를 습격하여 파괴하고 순사들을 도주케 하였다. 청송분파소의 지원 요청으로 대구 주둔 일본군 수비대 300명이 청송으로 들어왔다. 임용상 대장과 함께 영천(永川) 화산(花山)을 거쳐 6월 의성(義城) 방면으로 이동하면서 포위해 오는 일본군과 여러 차례 교전하였다. 의성군 안평(安平) 전투에서 접전 중 임용상과 함께 붙잡혔다. 1910년 7월 25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징역 7년 형이 선고되자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다. 그해 10월 23일 대구공소원에서 항소가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8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권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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