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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억
康濟億미상 ~ 1922
미상임시정부
관련 단체
- · 임시정부
포상 정보
- · 애국장(200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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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09) 출신 및 생몰 연대는 확인할 수 없다. 평안북도 창성군(昌成郡)의 연통제 조직에서 활동하다가 순국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국내에 행정조직망을 설치하기 위한 연통제를 실시하면서, 평북 창성군에도 1920년 1월 12일 강제희(康濟羲)를 군감에 임명하였다. 강제희는 압록강 건너 90리 거리에 있는 관뎬현(寬田縣) 향로구에 임시 군청을 개설하고, 창성군에 있는 조직원들과 연락하며 『독립신문』의 배포와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벌였다. 이러한 활동은 2년여 동안 계속되었다. 1922년 창성군에서 조직원으로 활동하던 이용익이 일제 경찰에 밀고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300여 명의 청년이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들 중 강제박(康濟博)·이병모(李炳模)·전봉재(全鳳梓) 등은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강제심(康濟深) 김하철(金河哲) 등과 더불어 체포되는 과정에서 피살 순국하였다. 관뎬현 남구 지방 인민대표는 1922년 10월 14·15일 통의부 교섭부장 김승만 사회로 그를 포함한 46명의 순국 독립운동가를 추모하는 추도회를 거행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윤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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