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공순
金恭順1901. 8. 5 ~ 1988. 2. 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전주면 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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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5) 1901년 8월 5일 전라북도 정읍군(井邑郡) 고부면(古阜面) 대정리(大井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전주군 이동면(伊東面) 화산리(華山里)에 거주하였으며, 기전여학교(紀全女學校) 출신이다. 전주 지역의 만세 시위는 기독교와 천도교계 등 종교계 인사와 학생들이 주도하였다. 3월 1일 오전 전주군 천도교 교구실에서 인종익(印宗益)에 의해 독립선언서 1,000여 장 및 서울에서의 만세 시위 방식이 전달되고, 천도교 직원을 통해 전북 지방 곳곳에 선언서와 운동 방식이 전파되었다. 천도교 전주교구에서는 기독교 측과 연락하여 만세 운동 계획을 추진해갔고, 준비 소식이 신흥학교(新興學校)와 기전여학교 등 기독교계 학교로도 전해지며 만세 시위 운동이 확산하였다. 이 과정에서 전주 지역 천도교계와 기독교계 인사들은 거사 일을 전주면 장날인 3월 13일로 정하였다. 기전여학교 출신으로 신흥학교 및 기전여학교 학생들과 함께 신흥학교 지하실에서 선언서와 태극기 등을 인쇄·제작하며 시위를 준비하였다. 시위 당일인 13일 오후 1시경 익산의 성서학교(聖書學校) 학생 최기물(崔氣物)과 최애경(崔愛敬)·최요한나(崔堯漢羅)·최금수(崔金洙)·함연춘(咸然春)·정복수(鄭福壽)·송순이(宋順怡)·김신희(金信熙) 등 기전여학교 학생과 강정순(姜貞順)·임영신(任永信) 등 기전여학교 출신자들과 함께 장터에 모인 주민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선언서를 뿌렸다. 이어 수백 명의 군중과 함께 전주면 남문 밖 시장에서부터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 만세를 외치고 남문을 지나 대정정(大正町) 우편국 부근까지 행진하였다. 그러나 시위 과정에서 11명의 여학생과 함께 일본 경찰에 붙잡혔으며 동료 학생들과 함께 시위 진압에 항거하여 4일간의 단식투쟁을 벌였고, 검사의 신문에도 강하게 저항하였다. 재판에 회부되어 1919년 6월 30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9월 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하여 형이 확정되었다. 그 뒤 12월 28일과 30일에 기전여학교 기숙사로 찾아온 서울 연지동(蓮池洞)의 정신여학교(貞信女學校) 학생 박순애(朴順愛)를 만났다. 박순애로부터 1920년 1월 6일 기전여학교의 수업 개시일을 맞아 독립 만세 시위를 다시 일으키자는 제안을 받았으나, 기전여학교 학생들이 3월의 만세 시위 운동으로 인해 모두 감옥에 가서 고초를 겪었기 때문에 응하기 어렵다는 의사를 전달하였다. 1920년 8월 7일 전주시 수해 이재민을 위한 기부금 모금 목적으로 열린 자선 음악 연주회에서 기전여학교 동창회원으로서 참여하였다. 1977년 2월 21일 함께 만세 운동에 참여했던 임영신의 영결식이 중앙대학교에서 거행될 때, 임영신이 복역 중 지었던 「독립의 노래」 가사 전문을 중앙대학교로 보내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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