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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석

金奎錫

1880. 1. 21 ~ 1941.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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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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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순천(順天)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순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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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1)

관련 사건

  • · 벌교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1) 1880년 1월 21일 전라남도 순천군(順天郡, 현재 순천시) 동초면(東草面) 신기리(新基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만세 시위 소식을 듣고 낙안 지역의 이병채(李秉埰)와 안호영(安鎬塋)·안규휴(安圭休)·안주환(安周煥)·오병원(吳炳轅)·김종주(金鍾冑) 등과 함께 결사 투쟁을 결심하는 의미로, 유비·관우·장비의 도원결의(桃園決議), 진(晋) 나라의 뜻있는 문사들이 난정(蘭亭)에서 모임을 갖던 옛일에서 뜻을 취해 ‘도란사(桃蘭社)’라는 조직체를 만들었다. 또 이 모임이 모체가 되어 안주환이 앞장서서 독립운동의 결사 대원을 모집하여 일사보국(一死報國) 하자는 의미로 ‘이팔사(二八社)’를 조직하였다. 이팔사의 대원에는 전평규(田坪奎)·안응섭(安應燮)·안용갑(安龍甲) 등이 소속되었는데 서울의 독립선언서 ‘민족대표’의 수와 같은 33인으로 구성하였다. 하지만 조직 보호를 위해 표면적으로는 다른 지역에도 존재하는 ‘위친계(爲親契)’라는 이름을 내세웠다. 이 조직은 이후 순천 일대의 만세 시위에서 큰 역할을 하였다. 4월 8일 신기리 한흥조(韓興祚)의 집에서 이팔사 조직원 33명, 같은 신기리의 안진영(安鎭榮) 등과 함께 모여 다음 날인 9일 보성군(寶城郡) 벌교면(筏橋面) 벌교리 시장에서 독립 만세를 고창할 서약서를 작성하고, 이에 서명하였다. 4월 9일 전평규·안용갑·안응섭 등과 함께 벌교리 음식점인 강억서(姜臆西)의 집에서 모였다. 오후 1시 20분경 벌교면 장좌리(長佐里) 시장에 가서 전평규가 안용갑·안응섭과 같이 ‘대한독립기’라 적힌 종이를 흔들며 장터에 모인 사람들에게 ‘각지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나니 우리도 뜻을 같이하여 독립을 절규하여 그 목적을 달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내용을 주장하고 독립 만세라고 크게 외치자, 이팔사 대원들과 함께 독립 만세를 크게 불렀다. 이에 다수의 장꾼들이 호응하여 만세 시위가 확대되었다. 그러나 경찰이 출동하여 강제 진압한 결과 수십명이 다치고 안덕환(安德煥)·안진영 등 13명과 함께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2일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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