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영
金今榮1901. 12. 4 ~ 1979. 5. 1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0)
관련 사건
- · 영산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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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0) 1901년 12월 4일 경상남도 창녕군(昌寧郡) 영산면(靈山面) 서리(西里)에서 태어났다. 영산면의 만세 시위는 천도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추진하였다. 천도교인 구중회(具中會)·장진수(張振秀)·김추은(金秋銀) 등은 의거 일을 3월 13일로 정하고, 야간을 이용하여 목판으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대한 독립 만세’라고 크게 쓴 깃발도 준비하였다. 3월 12일 구중회·장진수·김추은·남경명 등 주동 인물들이 구중회의 집에 모여 마지막으로 단행할 거사를 숙의하였다. 3월 13일 오후 2시경 22명의 천도교인들과 함께 창녕군 영산면에 위치한 남산(南山)에 집결하여, 이 운동에서 일보라도 후퇴하는 자는 다른 단원으로부터 생명을 빼앗긴다는 내용의 「결사단원 맹세서(決死團員盟誓書)」를 작성하여 각자 서명하였다. 원래 이들의 계획은 남산에서 개춘회(開春會)라는 명목의 모임을 열어 군중을 규합할 생각이었으나, 전날 구중회의 집에서 밀회하였다는 정보를 입수한 경찰의 감시로 하산하게 되었다. 남산 밑 만년교에서 대기하고 있던 경찰과 충돌이 벌어지자, 주동 인물들은 독립 만세를 불렀으며 이에 많은 군중이 가세하여 시위대는 300~400명으로 불어났다. 주동 인물들은 태극기를 앞세우고 큰 북과 징을 울리며 독립 만세와 전진가(前進歌)라는 창가를 소리 높여 부르며 영산면으로 행진하였다. 600~700명으로 늘어난 군중은 영산면을 누비며 시위 행진을 전개하였으며, 시위대의 일부는 주재소를 포위하고 일본인 상점을 습격하기도 하였다. 구중회가 시위 군중 앞에서 연설한 후 시위대는 자진 해산하였으나, 경찰은 구중회·장진수·김추은 등의 주모자를 체포하여 창녕경찰서에 수감하였다. 남은 20명의 주동 인물과 함께 긴급 모임을 하고 구속 동지를 탈환하기로 결의하고, 저녁 8시경 남산에 재차 집결하여 많은 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를 고창하며 영산면을 거쳐 창녕면으로 행진하였다. 이들은 계성교(桂城橋) 근처에서 저지하는 경찰과 일대 육박전을 전개한 후 시위대를 나누어 창녕경찰서로 쇄도하였으나 총검을 앞세운 경찰에 체포되고 말았다. 같은 해 6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보안법으로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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