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운
金東云1880. 5. 12 ~ 1947. 7. 1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대호지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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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5) 1880년 5월 12일 충남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현재 당진시) 조금리(調琴里)에서 태어났다. 공주지방법원 검사국의 1919년도 『형사사건부(刑事事件簿)』에는 당시 연령이 21세로 기재되어 있어서 생년월일은 정확하지 않다. 대호지면의 만세 운동은 도호의숙(桃湖義塾) 출신 유생들과 면장 및 면사무소 직원, 천도교 세력이 연합하여 추진하였다. 유생 남주원(南柱元), 이두하(李斗夏), 남계창(南啓昌), 남상직(南相直), 남상락(南相洛) 등은 고종의 장례식에 참여하려고 서울로 상경했다가 3월 1일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이들은 대호지면에서도 만세 시위를 전개할 생각으로 태극기 1매와 독립선언문 1매를 석유램프 속에 숨겨서 귀향하였다. 서울에서 남주원 등의 유림이 귀향하면서 만세 시위 준비는 본격화하여 이들로부터 서울의 만세 시위 상황을 파악하고 면장 이인정(李寅正) 및 민재봉(閔載鳳), 강태원(姜泰沅), 송재만(宋在萬) 등 다른 면사무소 직원들과 함께 동지로 결합하였다. 이후 천도교 측의 백남덕(白南德), 홍순국(洪淳國) 등도 동지로 결합하면서 만세 시위 계획이 구체적으로 추진되었다. 당시 오일장이 열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정미면 천의장터를 만세 운동의 장소로 결정하고, 장날인 4월 4일 대대적인 만세 시위를 전개할 것을 계획하였다. 주민들의 참여는 면사무소의 행정망을 통해 이루어졌다. 대호지면사무소에서 함께 근무하던 직원 송재만 및 강태원과 협의하여 면장 명의로 관내 도로 보수의 명분으로 주민을 참여시키려는 목적에서 「도로수선병목정리(道路修繕並木整理)의 건」이라는 공문서를 작성하였다. 이인정 면장은 각 마을의 구장(區長)들에게 이 공문서를 발부하여 “4월 4일 면내 가호당 주민 1명씩 출석하여 도로 보수에 참여하라”라는 내용을 주민들에게 전달하였다. 4월 4일 아침 농기구를 지참한 약 600여 명의 주민이 대호지면사무소에 집결하였다. 이인정과 유생들이 도로 보수는 위장된 목적이며 실제 목적은 만세 시위임을 밝히고, 집결한 주민들에게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공감한 주민들과 함께 독립 만세를 고창하면서 7킬로미터 떨어진 천의장터로 향하였다. 천의장터에서 정미면의 주민까지 1,000여 명으로 불어난 군중과 함께 시장 곳곳에서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과정에서 만세 시위를 제지하는 천의주재소와 지원 나온 당진경찰서의 경찰들이 당황하여 발포하자, 이들에 대항하여 천의주재소를 습격하는 데 앞장서서 참여하여 천의주재소 소속 우에하라(上原) 순사의 일본도를 탈취하였다. 이날의 만세 시위는 주재소를 완전히 파괴한 후 다음의 제2차 거사를 기약하고 자진 해산하였다. 시위대가 해산한 후 홍성헌병수비대가 대호지면으로 출동하여 만세 운동 참여자에 대한 대대적인 색출, 검거에 나서면서 체포되었다.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의 명목으로 붙잡혔다. 6월 30일 검사의 기소중지 처분으로 투옥은 면했으나, 서산경찰서로부터 태형 90도 처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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