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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학

姜永學

1864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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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강영학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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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충주(忠州)의병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충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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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이강년의진

포상 정보

  • · 애족장(2015)

관련 사건

  • · 정미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5) 1864년경 충청북도 충주군(忠州郡) 주유면(周柳面) 망청포(望淸浦, 혹은 망청개(望淸介), 현 충북 충주시 주덕읍(周德邑) 신중리(新中里) 신촌(新村))에서 태어났다. 영조(英祖)의 원릉(元陵)을 관리하는 관직인 참봉(參奉)을 지냈다. 1907년 12월부터 이강년(李康年)이 이끄는 의병부대에 참여한 후 소모장(召募將)으로 활동하였다. 일제는 1907년 7월 헤이그특사를 빌미로 고종(高宗)을 강제 퇴위시킨 후 본격적인 내정간섭을 주요 골자로 하는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강제 체결하였다. 이어서 8월 1일에는 대한제국의 군대해산을 강행하면서, 해산 군인이 중심이 된 ‘정미의병(丁未義兵)’이 전국적으로 확산하였다. 이 무렵 신문을 통해 국운이 기울고 일제에 의해 국권이 탈취되는 현실을 알게 된 후 시국을 개탄하였다. 한편, 이강년은 1907년 8월 5일부터 주로 충북 제천(堤川)·단양(丹陽), 강원도 영월(寧越) 등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다가 원주진위대(原州鎭衛隊)의 해산 군인들로 구성된 민긍호(閔肯鎬) 의병부대와 연합 전선을 구축하려고 충주성(忠州城) 공략에 나섰다. 충주성은 충북을 관할하는 관찰부 소재지였고 서울로 진격하기 위한 중요 관문이었다. 그 때문에 이강년은 제천-청풍을 거쳐 8월 23일 충주에 진출하였다. 충주에 거주하면서 이 무렵 이강년 의병부대에 관한 소식을 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강년 의병부대는 민긍호 의병부대와 합류하지 못하여 충주성 공략에 실패하였고, 이후에는 조령(鳥嶺) 일대와 경기 북부를 오가며 크고 작은 전투를 벌였기 때문에 합류할 수 없었다. 다만 이강년이 근거지인 단양 일대로 돌아가게 된 11월 말이 되어서야 합류할 수 있었다. 당시 이강년은 단양의 심실리(心室里)와 도덕암(道德庵) 사연남(沙連南) 일대에 진을 치고 전열을 정비하고 있었다. 11월 말에 단양의 심실리를 처음 방문하였을 때 부대의 척후병에게 체포되었다가 석방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후 이강년을 직접 만나고 12월부터 15일간 이강년을 수행하였다. 이윽고 의병부대의 활동을 지켜본 끝에 참모차첩(參謀差貼)을 받고 소모장에 임명되었다. 당시 이강년은 충북은 물론이고 강원도와 경북 일대에 소모장을 파견해 흩어진 군세를 규합하는 한편, 흩어진 의병들과 연합 전선 구축을 위해 각지에서 유격전을 펼치고 있었다. 소모장이 된 직후에는 이강년 부대가 주둔하던 단양의 사연남 일대에서 일본군과의 전투에 참전하였으나 패전하자 본진을 떠나 고향으로 향한 것으로 보인다. 이듬해인 1908년 초에 의병과 군수물자를 모집하려고 이강년 의병부대의 소모관임을 증명하는 소모관인(召募官印)을 휴대한 채 고향인 충주로 진입하였다. 이후 1908년 4월에는 손명선(孫明先)·인문환(印文煥)·이달성(李達成)·김봉학(金奉學)·이성순(李聖順) 등과 함께 충주의 덕산면(德山面)과 태소원(太召院) 일대에서 군자금과 군수물자를 모집하는 활동을 벌였다. 그 결과 40여 원의 군자금을 모금하고 수십 점의 물자를 모았지만, 이 활동이 충주경찰서에 알려져 경계를 서던 경찰에 은신한 곳이 발각되고 말았다. 이에 4월 20일에 충주경찰서에서는 복성면(福城面) 일대로 한인 6명과 일본인 3명으로 구성된 순사대를 파견하였다. 순사들은 주민 복장으로 변장한 후 오후 5시 30분경에 은신 지역인 금천면(金遷面) 탑평동(榻坪洞)으로 출동하여 한밤중에 민가를 수색해 은신한 민가를 찾아 포위하였다. 이에 4명의 동지와 함께 폭우가 내리는 와중에 돌입한 순사들에게 체포되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포위를 뚫고 탈출하던 손명선은 순사들의 총격에 순국하였다. 체포된 후 충주경찰서에서 활동 내역과 의병 참여 동기 등을 취조받았다. 이후 재판에 회부되어 1908년 12월 25일 충주구재판소에서 이른바 강도 및 내란죄로 징역 7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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