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민
高奉玟1862. 6. 26 ~ 1919. 6. 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독립의군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62년 6월 26일 전라북도 옥구(沃溝, 1995년 군산에 통합)에서 고인시(高鱗時)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제주(濟州)이며, 자는 일서(逸瑞), 호는 송재(松齋)이다. 유학자로 지역에서 후학을 기르는 한편, 국내외 정세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당시 호남 선비들 사이에서 명망을 얻었던 임병찬(林炳瓚)을 스승으로 모셨다. 을사늑약(乙巳勒約) 이듬해인 1906년 최익현(崔益鉉)과 임병찬이 태인(泰仁)의 무성서원(武城書院)에서 병오창의(丙午倡義)를 일으키자 의병 봉기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최익현과 임병찬이 그해 6월 순창(淳昌)에서 체포되자 은신하여 다음 기회를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1910년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후 1912년 9월 광무황제(光武皇帝, 고종)는 임병찬에게 밀조를 내려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를 조직하게 하였다. 이때 특승(特陞) 종3품 통훈대부(通訓大夫) 작위를 받고 전북순무영경리관(全北巡撫營經理官) 겸 만경군소모사(萬頃郡召募使)로 임명되어 의병 모집에 나서는 한편,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전답(田畓) 10여 정보(町步)를 매각하여 군자금으로 제공하였다. 1914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약 3년간 복역 후 석방되었다고 전한다. 그 옥고(獄苦)로 인해 기울병(氣鬱病)과 중풍(中風)의 후유증을 얻었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만세를 부르며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지병이 악화되어 같은 해 6월 5일 58세의 나이로 서거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윤정⋮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