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현
權益顯1845. 8. 17 ~ 1901. 9. 2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2)
관련 사건
- · 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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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12) 1845년 8월 17일 강원도 강릉(江陵)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권익현(權益賢)이다. 양반 신분으로 강릉의 토착 유생이었다. 1894년 12월 동학농민군이 강릉으로 진입해 올 때 연곡면의 종사관으로서 동학농민군을 진압하는 데 앞장서기도 하였다. 이때 연곡면 부연치(釜淵峙)를 지나는 농민군을 막기 위해 신리면(新里面)의 종사관인 최진구(崔鎭九)와 함께 양양(襄陽)의 포수 30명과 장정 100명씩을 뽑아 무장을 갖추었다. 이 사실을 통해 지역 내 의병부대를 자체적으로 구축할 수 있는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1896년 1월에 전개된 을미의병 당시 의병장 민용호(閔龍鎬)가 이끈 관동9군도창의소(關東九郡都倡義所)에 가담하여 오영도총독(五營都摠督) 및 소모사(召募士)가 되어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민용호 의병부대는 1895년 명성황후(明成皇后)가 시해당하는 을미사변이 일어난 직후 경기도 여주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민용호는 1896년 1월 30일 평창·영월·정선 등 강원도 일대의 포수들로 의병부대를 구성한 후 대장에 추대되었다. 민용호 의병부대는 강원도의 3대 요지 중 하나인 강릉으로 진입하였다. 강릉을 장기적 항전을 구상하기 위한 거점으로 삼기 위해서였다. 강원도는 산간지역이 많고 사격술이 출중한 농민 포수를 보유하고 있었다. 강원도에 특별한 인맥이나 학맥이 없었던 민용호는 강릉의 토착 인사를 포섭하였고, 이에 호응하여 민용호 의병부대 활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였다. 민용호 의병부대가 강릉으로 진출할 무렵 이미 또 다른 토착 양반인 심홍탁(沈鴻鐸)과 함께 수천 명의 의병부대를 구축해 둔 상태였다. 이에 민용호는 1월 30일, 강릉의 접경인 홍제평(현 강릉시 홍제동)에 도착한 후 강릉의 의병장들과 포수를 규합하고자 포고문을 보냈다. 심홍탁 등과 함께한 의병부대를 ‘부중의병(府中義兵)’으로 인정하고 합류할 뜻을 밝혔다. 그런데 이때 강릉부 안에서는 단발령이 선포되어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 이에 민용호는 단발령을 규탄하고 부중의 개화파 처단을 종용하는 격문을 보냈다. 1896년 2월 1일 이 격문을 접한 부중의병의 지휘부는 군사를 이끌고 경무서와 순검청을 공격하여 승리를 거뒀다. 이때 당을 짓고 친일 행위를 한 핵심 인물인 경무관보 고준식(高俊植)을 체포하여 민용호에게 인계하였다. 그 결과 강릉부에 입성한 민용호 의병부대는 강릉 9개 군의 의병장과 함께 관동9군도창의소를 설치하였다. 이때 영향력을 인정받아 오위도총독에 임명되었다. 당시 50세를 넘은 고령이었지만 의병부대를 대표할 만한 인물로 여겨졌기에 전투에 참여하지 않으면서도 병력을 모으고 적정을 탐지하는 소모사 역할도 겸하게 되었다. 같은 해 2월 7일 북각읍(北各邑) 소모사(召募使)에 임명되어 개항장인 원산항의 정세를 정탐하고 양양·간성·고성·통천·흡곡·안변 등 6읍에서 의병을 모집하려고 안변으로 출발하였다. 이때 원산은 민용호 의병부대의 다음 출병 지역이었고 민용호 의병부대를 포함한 관동창의군의 동남쪽 진출을 위한 첫 번째 보루였다. 그 때문에 미리 출발해 정탐해온 정보의 중요성은 매우 컸다. 그러나 이미 일제는 관동창의군의 원산 행군을 예상하고 원산 수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 같은 해 3월 2일, 강릉에서 출발해 개항장인 원산으로 향한 2,380여 명의 관동창의군은 3월 17일 원산 인근인 안변의 신평(新坪)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뜻밖의 폭우를 만나게 되었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머무르다가 일본군의 습격을 당하고 말았다. 이틀 후인 3월 19일 일본군 수비대가 관동창의군의 접근을 사전에 탐지하고 원산에 정박 중이던 다카오호(高雄號)에서 파견한 육전대와 합류해 포위 공격해왔기 때문이다. 이때 전투에 참여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 전투로 인해 패퇴한 민용호 부대와 관동창의군은 다시 강릉으로 돌아왔으나 6월 무렵 인근의 고성(高城)·양양 등으로 옮겨 다니다가 8월 초에는 결국 강릉을 떠났다. 이때의 활동과 행적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관동창의록』에 이름이 의병장으로 기재되어 있다. 1901년 9월 20일 별세하였다. 2014년 7월 24일에는 강릉 통일공원 안의 항일기념공원에 흉상이 건립되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2012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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