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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준

金基俊

1871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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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기준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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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언양(彦陽)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언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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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201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3) 경상남도 언양군(彦陽郡) 상북면(上北面) 남부리(南部里)에 살았으며, 1908년 7월 당시 38세였다. 1908년 봄부터 수십 명의 의병을 지휘하여 경남 울산군(蔚山郡)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특히 울산 강동면(江東面)·농동면(農東面)·농서면(農西面) 지역에서 활약이 컸다. 1908년 3월 10일 울산 내현면(內峴面) 봉월동(奉月洞) 김언양(金彦陽)에게 군자금 확보를 꾀하였다. 3월 19일 언양 읍내를 습격하여 순사주재소·재무서·우편소·군아(郡衙) 부속 건물을 불태웠다. 4월 15일 밤 울산 범서면(凡西面) 내사리(內沙里) 조봉면에게 군자금과 군수품을 징수하였다. 6월 30일 밤 11시경 병사 10여 명을 이끌고 농서면 오정동(五政洞), 곧 지금의 울산 농소동(農所洞)에 사는 임달이(林達伊)의 집에서 군자금을 확보하였다. 이 정보를 탐지한 울산경찰분서는 농동면에서 수색 작업을 하고 있던 일본인 변장순사대 4명을 농서면으로 급히 파견하여 오정동을 포위 공격하였다. 야간인 데다 비가 내려 지척을 구분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교전을 벌였으나 울산 상부면(上府面) 반곡리(盤谷里) 출신 김치옥(金致玉)과 함께 붙잡혔다. 울산경찰서분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울산 출신 김춘길(金春吉)·염덕로(廉德魯)·허익현(許益見)·박춘영(朴春永)·홍치언(洪致彦)·김치일(金致一)·박선일(朴善一)·송돌기(宋乭基)·박선익(朴善益), 언양 출신 이모(李某) 등의 의병을 지휘하였으며, 울산 지역에서 11차례의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음이 드러났다. 일본 경찰은 보고서(「폭도 체포에 관한 상황에 대한 건」, 1908.7.1)에서 “해당 폭도 최고의 우두머리가 김기준이며, 그의 부하에는 수십 명의 동지가 있으며 스스로 지휘 조종하고 있다”라고 기록하였다. 1908년 8월 31일 강도죄로 기소되어 같은 해 9월 9일 진주지방재판소에서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항소하였으나 1908년 10월 6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되었고, 같은 해 10월 24일 상고도 기각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권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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