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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노헌

金魯憲

1854. 2. 3 ~ 1910.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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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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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덕(盈德)의병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덕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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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영덕의진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5) 1854년 2월 3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북면(北面) 내묵리(內墨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수안(遂安)이며, 이명은 김중선(金仲善)이다. 1896년 (음)3월 영덕의병부대(盈德義陣)의 군문도지휘(軍門都指揮) 겸 총포장(摠砲將)으로 활동하였다. 영덕의병부대는 1896년 4월 지품면(知品面) 송천리(松川里)에서 지품 출신 김건(金健)을 대장으로 하여 조직되었다. 그러나 창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김건 대장의 일신 사정으로 대장이 신운석(申運錫)으로 교체되었다. 영덕의병부대는 일찍부터 청송의병부대(靑松義陣)와 군사적으로 협력관계를 유지하였다. 영덕의병부대는 청송 안덕면(安德面) 감은리(甘隱里)에서 의성연합의병부대의 주도로 전투가 벌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지원하려고 1896년 5월 17일 저녁 이평(梨坪), 현재의 부동면(府東面) 이전리(梨田里)에 도착하였다. 이때 전방장(前防將) 심의종(沈宜宗)·후방장(後防將) 신병렬(申炳烈)·서기 안문익(安文翼) 등과 함께 포군 42명을 이끌고 진군하였으나, 이전평(梨田坪)에 도착한 지 이틀 뒤인 5월 19일 영덕으로 회군하였다. 이어 5월 20일과 21일 청송의병부대에 두 차례에 걸쳐 긴급하게 원병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관군(官軍)이 경주(慶州)와 흥해(興海)를 거쳐 영덕으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원 요청을 받은 청송의병부대에서는 다음 날 포군(砲軍) 3초(硝)를 파견하여 지품에 도착하였다. 이 무렵 영덕의병부대는 이미 원척(元陟), 곧 현재의 영덕군 남정면(南亭面) 원척리(元陟里)에서 갑작스런 관군의 기습을 받아 12명의 부상자를 내고 흩어졌다. 이때 적탄에 총상을 입었다. 1896년 8월 신운석 대장이 삼종숙인 신태홍이 자신으로 오인을 받고 잡혀가 고초를 당하자, 스스로 관군에 출두하였다가 같은 해 9월 9일 총살당하였다. 이후 의병부대의 전열을 가다듬고 대장이 되어 의병을 새로 규합하고 지휘하였다. 일본군이 출현했다는 보고를 받고 축산면(丑山面) 기암동(奇巖洞) 보기암(洑基巖)에 매복해 있다가 일본군 통과 지점을 차단하여 이를 격파하였다. 영덕의병부대가 해산된 뒤에도 활동을 계속하였다. 1898년 8월 영덕 축산(丑山) 지역, 1900년 9월 청송·진보(珍寶) 지역, 1901년 3월 울진(蔚珍) 지역, 1903년 10월 영양 입암(立巖) 지역 등 1903년까지 영덕 일대에서 무장투쟁을 계속하였다. 그 과정에서 입은 부상으로 고초를 겪다가 1910년 5월 30일, 5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권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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