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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관

金德寬

1869 ~ 1908.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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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덕관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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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의병

포상 정보

  • · 애국장(200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5) 1869년 출생한 것으로 보이며 출생지에 대해서는 확인할 자료가 없다. 다만 강원도 영월(寧越)에서 동료 의병들과 함께 활동한 점으로 보아 영월 인근에서 출생하여 거주했던 것으로 보인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되었으며, 1907년 한일신협약(정미7조약)과 함께 광무황제(고종)가 강제 퇴위되고 군대까지 해산당하는 등 국권 상실이 현실화하자 전국에서 항일 의병이 일어나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해갔다. 특히 1907년 군대해산 이후에는 해산 군인들이 대거 의병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일반 평민 주도로 의병부대가 결성되어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가 벌여졌다. 강원 영월에 거주하던 당시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영월과 인근 제천 등지를 돌아다니며 의병 활동을 전개해갔다. 강원도에서는 1907년 군대해산 이후 춘천과 원주·강릉 지역을 중심으로 의병부대가 결성되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두각을 보인 의병부대는 원주에서 거의한 민긍호(閔肯鎬) 의병부대였다. 한편, 영월 지역에서는 영월 출신의 김동운이 삼척 출신의 김상태 의병부대에 참여한 뒤 제천의 이강년 의병부대에 합세하여 활동하고 있었다. 이들은 영월·죽령 등 소백산을 중심으로 한 험준한 산악지대를 이동하면서 일본군의 약점을 공격하는 유격전을 펼침으로서 상당한 타격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1907년 말부터 일본군의 탄압이 강화되면서 많은 의병이 체포되거나 전사하는 등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특히 1908년 이강년이 일본군에 체포되어 사망하자 분진하여 독자적인 의병부대를 결성하여 항일 유격전을 전개하였다. 1908년부터 신원덕(申元德)·김정대(金正大) 등과 함께 독자적인 의병부대를 결성하여 영월군 일대에서 항일 유격전을 이어갔다. 주로 험준한 지형지물을 활용한 유격전을 전개하였는데, 1908년 7월 6일 영월 남면(南面) 괴안리(槐安里)에서 추격해 오던 일본군의 기습을 받아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이때 동료 의병 신원덕(申元德)·김정대(金正大)와 함께 일본군과의 교전(交戰) 중 체포되었다. 7월 9일 압송 과정에서 동료들과 함께 탈출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피살되어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홍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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