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신홍균

申洪均

1870 ~ 미상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신홍균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충북 진천(鎭川)의병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진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오양선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5) 충청북도 진천군(鎭川郡) 산정면(山井面) 월촌리(月村里) 출신이다. 기록에 따르면 1908년 당시 39세이므로 1870년생으로 추정된다. 충남 보령군(保寧郡) 일대에서 오양선(吳良善)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07년 일제는 정미7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내정을 장악한 후 이어서 8월 1일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하였다. 이에 전국 각지에서 의병운동이 일어났고 해산 군인들이 의병 대열에 대거 참여함으로써 국권을 회복하기 위한 의병항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충청남도 지역에서도 을사늑약 이후 의병 활동이 꾸준히 전개되고 있었다. 이 무렵 오양선 의병부대에 속하여 보령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1908년 오양선 의병부대 소속으로 100여 명의 무장한 의병과 함께 보령·부여(扶餘)·청양 일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고 친일파를 처단하였다. 그 해 8월 24일 이춘성(李春成) 의병부대와 연합하여 80여 명의 의병과 함께 보령 읍내 순사주재소를 공격하던 중, 일본군 헌병에 붙잡혔다. 1908년 10월 28일 공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1910년 ‘대사령’으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은숙⋮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