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숙
金道淑1872. 2. 19 ~ 1943. 2. 12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심남일 의진(심남일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72년 2월 19일 전라남도 나주군(羅州郡) 봉황면(鳳凰面) 운곡(雲谷) 마을에서 출생하였다. 호(號)는 가석(可石)이며 이명(異名)은 김제헌(金濟憲)이다. 유생 출신이다. 1907년 한일신협약(정미7조약)과 함께 광무황제(고종)가 강제로 퇴위하고 군대까지 해산당하는 등 국권 상실이 현실화하자 전국에서 항일 의병이 일어나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였다. 전남에서는 의병장 기삼연을 비롯하여 김태원·김율 형제가 의병을 규합하여 활발한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일본군은 이들을 체포하려고 ‘토벌대’를 조직하였다. 결국 1908년 기삼연이 붙잡혀 총살되었으며, 이어서 김율이 붙잡히고 김태원은 전사하였다. 그러나 이들 휘하에 있던 의병들이 전라도 전역으로 흩어지게 되면서 의병이 확산되었다. 심남일은 당시 김율의 부장으로 참여하였으며, 1908년 3월 말 김율이 붙잡히면서 함평·남평·보성·장흥 등지를 돌아다니며 의병을 모집하여 독자적인 의병부대를 결성하게 되었다. 이때 심남일 의병부대의 도통장(都統將)이 되어 의병부대를 이끌었다. 1908년 3월 7일 강진군 옴천면 오치동을 지나가던 중 일본군 100여 명과 교전하여 일본군 수십 명을 사살하였다. 4월 15일에는 강진과 장흥의 경계지에 있는 수인산성에 입성하여 성벽을 보수한 뒤 근거지로 삼았으며, 장흥의 유치면 곽암(藿岩)에서 일본군을 매복 습격하여 수 명을 사살하였다. 6월 19일 남평 장담원(長淡院) 전투에서 일본군 5명을 사살하고, 6월 25일에는 능주 노구두(老狗頭)에서 일본군 5명을 사살하고 말 2필과 무기 등을 노획하였다. 이어서 심남일의 지휘 아래 영암의 사촌(沙村)·나주의 반치(盤峙)·장흥·신풍·해남 등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였다. 특히 10월 27일 능주의 석정(石亭) 등지에서 전개된 전투에서는 일본군 100여 명을 살상하기도 하였다. 한편, 심남일 의병부대는 독자적인 활동과 함께 일본군의 강력한 진압 작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고 주변 의병부대와 연대하여 전투를 치르기도 하였다. 대체로 1908년 8월 이후 안규홍·전해산·조경환 의병부대와 수시로 연대하면서 항일투쟁을 전개해갔다. 하지만 1909년 7월 순종의 의병 해산 칙령이 전해지자 심남일 의병장은 영암에서 의병부대를 해산하였다. 해산 이후 심남일은 능주의 풍치 바위굴에 피신하였다가 붙잡혔으며, 이어 1909년 10월 9일 전남 화순군 청풍면 백웅치에서 일본군과 교전 중에 붙잡혔다. 재판에 넘겨져 징역 7년 형을 선고받았다. 7년의 옥고를 겪고 석방된 후 고향에 머물다가 1919년 3·1운동 당시 향리에서 뜻을 같이하는 인사들과 ‘재거(再擧)’의 차원에서 만세 운동을 계획하였다. 하지만 만세 운동을 준비하던 중 사전에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실패하였으며, 이후 인근 지역을 떠돌면서 피신 생활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애국장(1986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홍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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