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沈永植

永植

1887. 7. 15 ~ 1983.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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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沈永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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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개성(開城)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개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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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개성군 송도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7년 7월 15일 경기도 개성군(金浦郡) 송도면(陽村面) 경정(京町)에서 태어났다. 맹인(盲人) 여성으로서 기독교학교인 호수돈여학교(好壽敦女學校) 기예과(技藝科)를 졸업하였고, 1919년 3월 3일 개성군 호수돈여학교 학생들이 주도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옥고를 겪었다. 1919년 3월 3일 호수돈여학교 학생 40여 명이 개성군 송도면 거리로 나와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개성지방의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다. 학생들에 의해 시작된 만세시위는 일반 군중들이 가담하면서 2천여 명이 넘는 대규모 시위로 발전하였다. 이때 호수돈여학교 졸업생으로서 불편한 몸에도 만세시위에 참가하여 선두에서 만세를 부르며 앞장섰다. 다음날인 3월 4일에는 호수돈여학교와 송도고등보통학교(松都高等普通學校)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만세시위를 이어갔다. 여기에 일반 군중 500여 명이 합세하여 함께 시가지를 행진하기 시작하였다. 시위 행렬이 송도면 북본정(北本町)을 행진할 때 참여하여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만세시위가 끝난 후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19년 5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노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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