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沈護燮

護燮

1891. 7. 25 ~ 1935.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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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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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晋州)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진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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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진주군 수곡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1년 7월 25일 경상남도 진주군(晋州郡) 수곡면(水谷面) 토곡리(土谷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심철섭(沈喆燮)을 사용하였다. 1919년 당시 수곡면 면장으로 3월 22일 수곡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진주군의 만세운동은 3월 18일 진주 중심부인 읍내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4월 중순까지 9차례의 시위가 일어났다. 3월 18일 읍내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그 소식을 듣고 현장으로 달려가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때 독립선언서와 격문을 입수하여 돌아왔고, 김기선(金基宣)·정봉숙(鄭奉淑) 등과 수곡면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주도자들과 함께 논의하여 거사일은 수곡면 장날인 3월 22일로 결정하고, 만세시위 때 사용할 태극기와 독립선언 전단, 격문 등을 제작하였다. 이때 독립선언서와 격문을 제작하기 위해 사재(私財)를 기부하였다. 3월 22일, 수곡면사무소 앞에서 김기선·정봉숙 등 주도자들과 함께 자체 제작한 큰 태극기를 게양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장터에 나왔다가 이 광경을 본 주민들이 호응하여 만세를 따라 부르고, 사전에 격문과 함께 연락을 받고 시위 참가를 위해 나온 사람들이 합세하여 시위대가 형성되었다. 주도자들과 함께 선두에서 만세를 부르며 시위대를 이끌었고, 장터를 행진하였다. 만세시위에 참가하는 군중들도 늘어나 시위대의 규모가 커졌다. 그러나 곧 만세시위의 소식이 주재소 경찰들에게 보고되고 출동한 경찰들의 진압이 시작되었다. 평화적인 시위였기에 총검을 휘두르면서 시위대의 강제 해산과 함께 주도자 체포에 나선 일제 경찰의 체포망을 벗어날 수 없었다. 결국 김기선·정봉숙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였다는 이유로 붙잡혔다. 일제 경찰의 고문을 동반한 조사 후, 기소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5월 12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1919년 12월 29일 풀려나 일본으로 건너갔고, 1920년대 중반 도쿄(東京)와 나고야(名古屋)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친일 한국인단체인 상애회(相愛會)·근로조합(勤勞組合)과 대립하면서, 재일 한국인 사회의 민족의식과 항일 애국정신을 고취시켰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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