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梁元西

元西

1861. 4. 15 ~ 1923. 8. 13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梁元西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충남 청양(靑陽)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청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4)

관련 사건

  • · 청양군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4) 1861년 4월 15일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목면(木面) 신흥리(新興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청양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청양군 목면 만세시위는 인근의 정산면(定山面) 정산시장에서 시작된 만세시위와 연결되어 일어났다. 1919년 4월 5일 오후 정산면 백곡리(白谷里)의 홍범섭(洪梵燮)·임의재(任毅宰)·윤석희(尹錫禧)·홍세표(洪世杓)·박상종(朴商鍾) 등은 장날이었던 서정리(西亭里)의 정산시장으로 나가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장에 나온 주민들 앞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고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만세시위를 시작하자, 100여 명이 동참하였다. 이에 일제 헌병이 즉각 출동하여 만세시위를 주도한 홍범섭 등 30여 명을 붙잡아 헌병분견소로 연행하였다. 장날 시장에 나왔다가 폭압적인 일제 헌병의 만세시위 탄압에 분노한 주민들이 시위에 동참하면서 시위대 규모는 700여 명으로 확대되었다. 연행된 홍범섭 등을 대신하여 안심리(安心里)에 거주하는 정산향교(定山鄕校) 직원 권흥규(權興圭)가 일제 헌병분견소 앞에서 연행자 석방을 요구하며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던 중, 일제 헌병의 발포로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다음날인 4월 6일 아침 권흥규의 시신 운구가 시작되었다. 권흥규의 친인척들을 비롯하여 전날 만세시위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헌병주재소로부터 시신을 인수하여 고인의 자택이 있는 목면 안심리(安心里)로 향하였다. 이때 운구 행렬의 선두에서 ‘배일사권공지구(排日士權公之柩)’라고 쓴 명정(銘旌)이 앞장섰다. 권흥규의 운구가 신흥리 인근을 지나갈 때 마을 주민들과 함께 노제를 올리고 통곡하며 운구 행렬에 동참하였다. 운구가 안심리로 가는 동안 운구 행렬 규모는 더욱 확대되었다. 운구 행렬 중 주민들은 “조선독립만세”를 부르짖었고, 이때부터 운구행렬은 독립만세시위대로 전환되었다. 이때 운구에 참여한 사람들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안심리를 향해 나아갔다. 운구 행렬이 만세시위대로 전환되자, 일제는 공주(公州)의 헌병대를 안심리 방면으로 급파하였다. 일제 헌병들은 운구 행렬과 마주치자마자 곧바로 총을 쏘았고, 권흥규의 조카딸을 비롯한 여러 시위대 참여자들이 사망하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로 인해 일제 헌병에 붙잡혀 청양헌병분견소로 연행되어 조사받았다. 권흥규의 시신 운구와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이유로 1919년 4월 21일 즉결심판에 회부되어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아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