梁日杓
日杓1880. 6. 20 ~ 1959. 6. 1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장수군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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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1880년 6월 20일 전라북도 장수군(長水郡) 장수면(長水面) 두산리(斗山里)에서 태어났다. 고향 마을에서 농업에 종사하면서 천도교(天道敎)를 신봉하였다. 1919년 3월 2일 전북 장수군 천천면(天川面) 일대 면사무소 게시판과 기타 장소에 독립선언서를 부착하며 장수군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장수군 일대 독립선언서 배포는 3월 2일 오후 6시경 천도교 장수교구장 박영춘(朴永春)이 장수리(長水里) 천도교구실에서 남원군(南原君) 보절면(寶節面) 성시리(城侍里)에 거주하는 장경일(張京日)에게, 천도교주 손병희(孫秉熙) 외 32인이 서명한 독립선언서 12통을 전달받으면서 이루어졌다. 이때 박영춘은 전달받은 독립선언서 12통 중 7통을 장경일의 심부름꾼 최영식(崔永植)에게 주고, 3통을 천도교도 신동개(辛東開)에게 주었다. 이때 빈영섭(賓永燮)과 함께 박영춘으로부터 남은 독립선언서 2통을 받았다. 박영춘은 독립선언서를 전달하면서 장수군 일대 주민들 눈에 잘 띄는 장소에 붙이라고 당부하였다. 같은 해 3월 2일 밤 12시경, 박영춘의 지시로 빈영섭과 함께 장수군 천천면사무소 게시판에 독립선언서 1부를 붙이고, 천천면 내 기타 장소에 독립선언서 1부를 추가로 붙여 지역 주민들의 독립의지를 고취시켰다. 하지만 일제 경찰은 독립선언서 배포 직후 장수군 일대 독립선언서가 천도교 교구실에서 나왔다는 정보를 탐지하였다. 그 결과 장수교구장 박영춘이 일제 경찰에 붙잡혔고, 이에 빈영섭 등과 함께 피신하여 장수군 각 지역에서 독립만세시위를 독려하는 역할을 수행하다가 마찬가지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이후 1919년 4월 8일 광주지방법원 남원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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