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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룡

吳基龍

1859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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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오기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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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순천(順川)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순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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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순천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평안남도 순천군(順川郡) 은산면(殷山面) 서남리(西南里) 출신이다. 1919년 고등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당시 61세로 1859년생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던 중 1919년 3월 순천군 은산면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일제로부터 고초를 겪었다. 순천군 만세운동은 1919년 3월초부터 전개되기 시작했는데 신창면(新創面)에서는 신창 감리교회 교인이었던 박창빈(朴昌彬)으로부터 2월 28일 서울에서 독립선언서가 비밀리에 전달되었다. 해당 교회 담임목사 이윤영(李允榮)이 이를 받아 기독교회 간부·천도교 간부·금융조합 서기·면장·의사·여성·청년층 등을 규합하면서 만세시위가 준비되었다. 은산면(殷山面)과 자산면(慈山面) 그리고 읍내에서도 3월 2일부터 3월 6일까지 시위가 이어졌다. 이 지역의 시위는 천도교와 기독교가 주도하였고 1,000명 이상이 모이는 대규모 집회가 벌어졌다. 순천군이 자산군과 순천군이 합하여 하나의 군이 된 영향으로 만세시위도 2개의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은산면의 첫 시위는 1919년 3월 2일에 일어났다. 천도교가 이를 주도했는데 천도교구장 김기수(金基洙)가 주도하여 1,000여 명의 군중이 모여 만세시위를 하였다. 자산에서는 3월 4일에 큰 시위가 일어났으며 천도교구장 김선오(金善五)가 이 시위를 주도하였고 역시 1,000여 명의 군중이 독립만세를 불렀다. 그러자 일제는 평양으로부터 장교 이하 21명의 보병을 증파하여 경계를 강화하고, 순천읍의 천도교와 기독교 관계자들을 불러 시위를 하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일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3월 6일, 천도교와 기독교 주도 하에 더 큰 규모인 2,000여 명이 모인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일본군 수비대에 의한 시위대 강제 해산 과정에서 11명이 부상을 당하였고 다수의 검거자가 발생하였다. 또 같은 날 신창면에서 기독교 주도 하에 의사, 교사 등 면내 유지와 면장·금융조합 관계자·천도교가 힘을 합하여 조직한 대규모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3월 6일은 신창면의 장날로 3,500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대형태극기, 독립선언서와 각종 선언문이 배포되었고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이렇듯 만세시위가 여러 날에 거쳐 전개되던 상황에서, 3월 4일 은산면으로 가던 길에 만세를 부르는 군중을 만나 시위에 합류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만세를 부르던 중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5월 28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8월을 받고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6월 28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윤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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