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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열

吳基烈

1888. 3. 9 ~ 1950.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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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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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진안(鎭安)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진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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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마령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8년 3월 9일 전라북도 진안군(鎭安郡) 마령면(馬靈面) 평지리(平地里)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農業)에 종사하다가 1919년 4월 마령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은 3월 1일 서울에서부터 시작하여 전국 각지로 확산되었고, 진안군에서도 3월초에 만세운동 소식이 전해졌다. 그 해 3월 6일, 고향 마을에 사는 이성녀(李姓女)의 집에서 같은 마을에 사는 전영상(全永祥)과 함께 한국 독립을 위해 만세시위를 할 것을 촉구하는 격문(檄文)을 3통을 작성하였다. 이어 평지리 마을 게시판(揭示板)에 붙여 주민들에게 만세시위를 독려하였다. 그 후 같은 마을에 사는 김구영(金龜泳)·황해수(黃海水) 등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며 행진하였다. 이로 인해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19년 4월 21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5월 1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다시 징역 1년 6월을 받아 상고하였다. 이때 격문을 평지리 게시판에 붙인 것은 “10년 전 사망한 부모가 소생하여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족에게 경고하고 아버지를 부르고 환영하는 것과 동일한 것임에 국민이 자국의 부흥을 기뻐함은 국민의 본분이고, 죽은 아버지의 소생을 기뻐함은 자식 된 도리이다”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6월 19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석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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