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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영

吳琪永

1897. 4. 4 ~ 1972.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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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오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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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순천(順天)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순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벌교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97년 4월 4일 전라남도 순천군(順天郡) 동초면(東草面) 신기리(新基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오영태(吳永泰)를 사용하였다. 1919년 4월 일어난 보성군(寶城郡) 벌교면(筏橋面)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일제로부터 고초를 겪었다. 1919년 4월 9일에 보성군 벌교면 장좌리(長佐里) 아랫 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전개하기 전 4월 3일, 사전에 동초면 신기리에서 이팔사(二八社)라는 비밀결사를 결성하였다. 전평규(田平奎)·안응섭(安應燮) 등 32명이 참여한 이팔사는 “우리들 청년은 국파군망(國破君亡)한 이때를 당하여 일사보국(一死報國)하자”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였다. 일제의 감시를 피하고자 항일운동 단체라는 사실을 속이고,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계원들끼리 서로 도와주기 위해 구성한 친목회로 위장하였다. 이어 동지들과 함께 벌교 시장 만세시위를 위한 서약서를 작성 후 결의를 다졌고, 4월 9일 거사날에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로 인해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19년 5월 2일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장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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