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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달영

吳達泳

1891. 9. 28 ~ 1940.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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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오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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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洪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홍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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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7)

관련 사건

  • · 금마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7) 1891년 9월 28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월암리(月岩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일어난 금마면 가산리(佳山里) 연극공연장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금마면 만세시위는 부평리(富平里)의 민영갑(閔泳甲)과 이재만(李載萬)이 주도하여 일어났다. 민영갑과 이재만은 3월 1일 서울에서부터 만세시위가 시작되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파악하고는 4월 1일 이원교(李元交)의 집에서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연극이 공연되는 것을 기회로 만세운동을 펼친다는 계획을 세웠다. 만세운동의 실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시위 계획을 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에게 알리고 그들로부터 적극적인 찬성을 받았다. 4월 1일 이원교(李元交)의 집에서 연극이 공연되자, 민영갑·이재만·김재홍·최중삼 등은 관람객으로 모인 주민들에게 만세시위에 함께 동참해줄 것을 호소하며 동의를 구하였다. 이에 동의하고 만세시위에 찬동한 주민들과 함께 시위가 전개되기를 기다렸다. 오후 8시경 민영갑 등이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자, 다른 주민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호응하여 함께 ‘독립만세’를 불렀다. 연극공연은 곧바로 만세시위로 전환되었고, 이 날 만세시위는 출동한 일제 경찰에 의해 당일 해산되었다. 경찰은 만세시위 참여자들을 붙잡지 않고 해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시위 진입을 위해 출동한 일제 경찰에 붙잡혀 홍성경찰서에 구금되었다. 이후 1919년 4월 23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아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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