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承甲
承甲1892. 10. 23 ~ 1960. 3. 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8)
관련 사건
- · 사천군 사천면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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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8) 1892년 10월 23일 경상남도 사천군(泗川郡) 사천면(泗川面) 두량리(斗良里, 현 사천시 사천읍 두량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14일 사천면 도로 건설현장에서 만세운동 궐기를 주도하였다. 당시 일제는 사천면 중선리(中宣里) 일대에 병영을 건설하고자 주변 도로를 정비·확충하였는데, 이 도로 건설에 필요한 인력을 주변 동리에서 강제 징발하는 것으로 정하고, 인력 동원을 주변 마을의 구장(區長)들에게 할당시켰으므로 농번기를 보내고 있는 주민들로부터 원성이 높아지고 있었다. 운동 당일인 4월 14일의 노역은 두량리 주민들의 차례였는데, 운동 전날 두량리의 구장이지만 노역에 나갈 수 없었던 당숙을 찾아가 대신 인원을 인솔하기로 하고, 이튿날 두량리 주민 100여 명을 이끌고 중선리로 나아가 도로 건설을 실시하였다. 서울의 독립선언 소식과 3월 13일부터 사천 각지에서 계속되어온 만세운동에 대한 소문을 들어 알고 있던 중에 인부들이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손계묵(孫季默)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 “오늘날 우리가 왜놈들에게 나라를 도둑맞고 이 땅에서 강제로 노역하며 혹사당하고 있으니 어찌 원통하지 않겠는가? 우리도 독립만세를 불러 시위를 벌이자”라고 연설하며 만세운동 궐기를 촉구하였다. 이에 인부 36명이 뜻을 같이하여 만세를 수차례 외치자 주민들이 합세하여 대열은 수백 명으로 늘어났고, 군중을 선두에서 인솔하여 사천읍내를 향해 행진하였다. 사천 내에서 계속되던 만세운동으로 인해 일대를 삼엄하게 경계하고 있던 일제 헌병대는 만세운동 행렬을 목격하고 탄압하였는데, 이때 헌병들이 휘두른 곤봉과 총검에 부상을 입고 연행되었으며, 이후 헌병대 내에서 잔혹한 고문을 받은 끝에 시위의 주도자로 지목되어 형사재판에 넘겨지게 되었다.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인부들 앞에서 대한독립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군중을 인솔하여 만세를 외친 행위가 치안을 혼란케 한 것”이라 하여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조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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