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원
金基元미상 ~ 1908. 11. 2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200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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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05) 출생 연도는 미상이며 전라남도 곡성(谷城郡) 죽곡면(竹谷面) 고치리(古致里)에서 태어났다. 집안 및 성장 과정 등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김동신(金東臣)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의병 활동을 하였다. 김동신은 충남 회덕(懷德郡) 탄동면(炭洞面) 덕진동(德津洞) 출신의 의병장으로, 1907년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이 체결되어 일본의 한국 내정간섭이 본격화하자 500년 사직이 위급하다고 판단하고 현 정권의 대신들과 일본 병사들을 추방할 목적으로 1908년 8월 전북 정읍(井邑)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김동신 의병부대의 규모는 한때 1,000여 명 규모였으며, 순창(淳昌)·남원(南原)·함양(咸陽)·안의(安義)·용담(龍潭) 등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였다. 김동신 의병부대에서 중책을 맡은 인사로 임병주(林炳燁)·유중환(兪鍾煥)·문태익(文泰翌)·최정근(崔正根)·성문길(成文吉)·차은표(車恩表)·오대근(吳大根)·국인묵(國仁黙) 등이 있었다. 김동신 의병부대는 1907년 이후 남원·구례(求禮)·순창 등지에서 순사주재소와 우편취급소를 습격하여 점령하고 군자금품을 노획하는 등 활약하였다. 그 또한 정확한 가입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의병부대의 이러한 활동에 힘을 보탰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병환으로 잠시 요양 중이던 김동신은 1908년 6월 8일에 체포되어 대전경찰분서(大田警察分署)의 경부 홍종익(洪鍾翊)으로부터 1908년 6월 11일 심문을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김동신에 체포된 후 의병부대는 해산되었다. 김동신 의병부대의 잔여 세력들은 몇몇 비장들을 중심으로 인원을 나누어 각자 주변 지역으로 흩어져 의병 활동을 이어갔다. 이때 전남 지역을 대상으로 한 잔여 세력에 합류해서 의병 활동을 지속하였다. 그러던 중 1908년 11월 28일에 구례수비대(求禮守備隊)에 체포되어 취조를 받다가 탈출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여 피살됨으로써 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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