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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淵博

淵博

1844. 9. 28 ~ 1925.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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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柳淵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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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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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5)

관련 사건

  • · 한말 의병
  • · 파리장서 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1995) 1844년 9월 28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임동면(臨東面) 수곡동(水谷洞, 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字)는 경심(景深), 호(號)는 수촌(水村)이다. 조선 말기 유학자이며 정재학파(定齋學派)의 한 사람인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김흥락은 정재학파 중에서도 한말 의병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를 많이 배출한 것으로 유명한데 이들 중 한 사람이다. 한말에는 의병으로 활동하였으며, 일제강점기인 1919년에는 파리장서(巴里長書) 운동에 참여하는 등 항일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52세가 되던 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 시행으로 전국에서 의병들이 모여들 때 분연히 일어나 의병장 김도현(金道鉉)과 함께 권세연(權世淵)이 이끄는 의병부대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76세인 1919년 3월 유림들이 주축이 되어 전개한 파리장서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일명 ‘제1차 유림단(儒林團) 사건’으로도 불리는 파리장서운동은 파리강화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청원하는 문서를 전달하여 한국의 독립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한 것이다. 이 운동에는 곽종석(郭鍾錫)·장석영(張錫英)·김창숙(金昌淑)·김복한(金福漢) 등 영남과 호서의 유림들이 힘을 합쳐 실행하였다. 김복한·곽종석·김창숙·장석영 등이 「파리장서」 작성에 참여하였고, 장서에는 일제의 강압적인 주권 침탈과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밝히고 있다. 서한이 완성되자 137명의 유림들이 연서하였으며 유림의 한 사람으로 장서에 서명하며 조국의 독립을 열망하였다. 「파리장서」는 상하이(上海)를 거쳐 당시 신한청년당(新韓靑年黨) 대표로 파리에 파견되어 있던 김규식(金奎植)에게 전달되어 파리강화회의 의장에게 보내졌다. 또한 영문본과 한문본을 인쇄하여 각 나라의 공사관과 대표들에게 발송하였으며, 국내에는 향교를 통하여 한문본이 전달되었다. 비밀리에 전개된 파리장서 운동은 장서의 서명자 중 한 사람인 송회근(宋晦根)이 같은 해 4월 2일 경상북도 성주군(星州郡) 만세운동으로 붙잡히면서 드러나게 되었다. 일제는 파리장서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을 모두 체포하였는데, 이때 붙잡혀서 고초를 겪었다. 경찰에 붙잡힌 후 4월 23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 상해죄, 훼기죄에 대한 재판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되어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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