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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성

柳淵成

1857. 5. 8 ~ 1919.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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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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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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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안동군 임동면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57년 5월 8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월곡면(月谷面) 계곡동(桂谷洞, 현 안동시 예안면 계곡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유학을 공부하였다. 63세인 1919년 3월 21일 임동면(臨東面) 중평동(中坪洞, 현 중평리) 편항시장(鞭巷市場, 챗거리장)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서울에서 귀향한 학생이나 만세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에 의하여 시위 소식이 전해지면서 안동군에서도 만세운동을 계획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유동시(柳東蓍)로부터 만세운동에 대하여 듣고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심하고 뜻을 같이할 사람들을 규합하였다. 사람들에게 “지금 우리가 만세를 부르고 관청을 파괴한다면 반드시 조국의 독립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며 주민들의 동참을 이끌었다. 1919년 3월 15일 편항시장 동편 공동 타작장인 인낙장(籾落場)에서 유동수(柳東洙)·박재식(朴載植)·유교희(柳敎熙)·박진선(朴晋先)·이강욱(李康郁)·홍명성(洪明聖)와 함께 모여 만세운동을 논의하였다. 주도자들은 3월 21일에 만세운동을 단행하기로 결의하고, 임동면에서 가장 큰 장이 열리는 편항시장을 거사 장소로 택하였다. 그리고 보다 많은 사람들을 참여시키기 위하여 임동면 구역을 나누어 주민들을 동원하기로 하였다. 이때 대곡동(大谷洞, 현 대곡리)과 위동(渭洞, 현 위리) 지역을 맡아 동민들을 동원하기 위하여 비밀리에 움직였다. 거사 당일인 1919년 3월 21일, 아침 일찍 편항시장으로 향하였다. 장터에는 장꾼과 더불어 주동자들이 동원한 마을 사람들도 모여 만세시위가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오후 2시 시장에 모인 주민들을 향하여 우리가 왜 독립만세를 불러야 하는지를 이야기한 이후 ‘대한독립만세’를 목청껏 외쳤다.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일어나기만을 기다린 주민들도 일제히 일어나 ‘독립만세’를 연호하였다. 사방에서 터져 나온 만세소리에 장터는 한 순간 만세운동의 열기로 가득하였다.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일본 경찰은 즉시 출동하였고, 경찰은 시위대를 이끌고 있는 주도자를 붙잡으려고 하였다. 이를 본 군중들은 이들을 지키기 위하여 경찰들에게 달려들었고, 놀란 경찰은 그 자리에서 달아나 주재소로 도망갔다. 이에 배태근(裵太根)·박진선·조학이(趙學伊) 등과 함께 시위대를 이끌고 주재소로 향하였다. 주재소에는 주도자를 비롯한 500여 명의 군중이 모였다. 이때 경찰이 나와 위협하며 권총을 발사하자 조학이·유곡란(柳谷蘭) 등과 함께 경찰 앞에 나와 가슴을 열어 제치며 “죽이려거든 여기를 쏘라”고 하였다. 그들의 기세 눌린 경찰은 그 자리에서 달아났다. 이어서 유동수·조학이 등과 시위대를 이끌고 주재소 안으로 들어가 몽둥이로 주재소 창문과 책상, 의자 등 비품들을 모두 파괴하고 서류와 문서도 파기하였다. 또한 경찰에게서 대검과 권총을 빼앗고 주재소에 있던 무기들도 모두 모아 주재소 뜰에 있는 우물 안에 버렸다. 같은 날 오후 5시 다시 시위대를 이끌고 면사무소로 향하였다. 1,500여 명이 만세운동에 호응하여 면사무소 앞에 모였다. 시위대는 출입문을 파괴하고 유리창과 벽을 모두 부쉈으며, 사무실 안의 기물과 문서도 모두 파괴하였다. 면사무소를 모두 파괴한 시위대는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다음날 새벽 3시까지 시위를 이어간 후 자진하여 해산하였다. 만세시위 후 일본 경찰은 대대적인 주도자 검거 작전을 펼쳤고, 곧 붙잡혔다. 체포된 이후 1919년 4월 17일에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이감되었으며 같은 해 5월 3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 건조물손괴죄, 가택침입죄, 상해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7년을 받았다. 이 형량은 편항시장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참여한 인물들 중에서 가장 높은 것이었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지만 같은 해 8월 1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7년을 받았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그해 9월 25일 수감 중 모진 고문의 후유증으로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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