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劉永唱

永唱

1893. 12. 1 ~ 1925.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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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劉永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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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성(安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안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임시정부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7)

관련 사건

  • · 안성군 일죽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7) 1893년 12월 1일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현 안성시) 일죽면(一竹面) 당촌리(唐村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한자가 다른 유영창(柳永昌)이 있다. 자료의 한계로 성장 환경 및 학력 등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는데, 판결문에 기록된 직업은 잡화상(雜貨商)이었다. 1919년 4월 2일 안성군의 일죽면에서 거행된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있었던 민족대표들의 독립선언과 만세운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안성은 일본인이 유입되어 농토를 차지하고 지역 경제를 교란하는 한편으로, 지세(地稅)를 인상하고 각종 물품에 대한 세금을 징수하고 농번기에 주민들을 도로공사 등의 부역에 동원하는 등 조선총독부의 식민통치에 대한 불만이 높아진 지역 중 하나였다. 그 해 3월 11일 만세운동이 시작되었고, 같은 해 3월 31일 이덕순(李德順)·최은식(崔殷植)·이유석(李裕奭)·홍창섭(洪昌燮) 등을 중심으로 한 원곡면(元谷面)과 양성면(陽城面)에서의 만세운동은 주변 마을의 만세시위 열기를 가속하였다. 일죽면 장암리(長岩里)의 구장(區長) 곽대용(郭大鎔)은 안성 내 만세운동 소식을 듣고 마찬가지로 일제의 통치기관들을 파괴하여 만세운동을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일죽면 사람들의 참여를 독려하였다. 이때 곽대용의 권유를 받고 운동 참가를 결심하였다. 일죽면 주민 200여 명과 함께 1919년 4월 2일 밤중에 집결하여 횃불과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치면서 마을을 행진하였고, 주천리(注川里)에 있는 면사무소와 주재소를 포위하였다. 이때 군중들과 같이 면사무소 및 주재소에 돌과 기왓장을 던져 유리창과 외벽을 파괴하였다. 일제는 원곡면·양성면의 만세운동 이후 경찰 및 헌병들을 동원하여 가옥에 불을 지르고 한국인들을 마구잡이로 구타하는 등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였는데, 일죽면에서도 시위 참가자들을 찾는다는 명목으로 주민들을 검속(檢束)하여 강제로 연행하였다. 그 과정에서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는 이유로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고, 1919년 7월 1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군중들과 함께 만세를 외치고 주재소와 면사무소에 돌을 던져 기물을 파손했다는 이유를 들어 이른바 소요죄로 태(笞) 50도(度)를 받았다. 만세운동 이후에도 독립운동에 투신하여, 1920년 충청북도 청주(淸州)에서 항일 비밀결사 평앙결사단(平壤決死團) 청주지부를 조직한 신형식(申亨植)을 도와 자택을 결사 회의 장소로 제공하는 한편, 청주 지역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자금 모금 활동에 참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조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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