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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태

兪永台

1902. 7. 19 ~ 1950.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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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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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광(靈光)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영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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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9)

관련 사건

  • · 영광군 법성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9) 1902년 7월 19일 전라남도 영광군(靈光郡) 법성면(法聖面) 진내리(鎭內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18세였다. 이명으로는 한자가 다른 유영태(兪永泰)가 있다. 만세운동 당시 신문 기사에 따르면 사립 법성포보통학교 2학년생이나, 기록에 따라서는 학생이 아닌 일반인으로 된 것도 있다. 영광군 법성포(法聖浦) 지역 시위를 계획하는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1919년 3월 1일을 기하여 서울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전개된 만세운동의 물결은 영광군에도 예외 없이 찾아왔다. 영광군 내 여러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중에서 법성포에서는 사립 법성포보통학교를 중심으로 계획되었다. 법성포보통학교에 근무하던 교사 나계형(羅啓炯)과 학교를 중도 퇴학한 기독교인 박명서(朴命緖)가 주도하여 법성포 지역의 만세시위를 일으키고자 하였다. 박명서는 법성포보통학교로 찾아가 나계형에게 만세운동을 권유하고, 또한 학생들에게도 권유하여 대규모 만세시위에 학생들을 참가시키고자 하였다. 나계형·박명서·최복섭(崔福爕) 등의 권유에 마음이 움직여 이들의 거사에 함께하고자 하였다. 이들은 그 해 4월 1일을 기하여 중리(中里) 당산(堂山)에서 시위를 일으키기로 계획하였고, 시위 현장에서 참여 군중에게 나눠줄 태극기를 진내리 박명서의 집에서 만들었다. 그런데 만세시위를 실행하기 전인 3월 30일 법성우편소 주재소에 넣은 10장의 태극기가 발견되면서 일본 경찰의 수사를 받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4월 1일 시위당일 시위 장소에 모여들던 시위 주도 인물들이 붙잡혔다. 경찰이 수사를 진행함에 따라 다른 주요 인물들과 함께 붙잡혀 목포검사국에서 취조를 받았으며, 공판에 회부되었다. 형사사건부에 따르면 1919년 4월 22일 기소유예로 불기소 처분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나, 이후 다시 재기소되어 재판에 넘겨진 것으로 보인다. 1919년 5월 10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열린 공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개월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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