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기
兪仁基1890. 2. 16 ~ 1957. 2. 2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대호지면
- · 정미면 천의장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5) 1890년 2월 16일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도리리(桃李里, 현 당진시 대호지면 도이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기계(杞溪)이며, 이명으로는 한자가 다른 유인기(兪仁奇)가 있었다. 농업과 상업에 종사하며 생활하던 중 1919년 4월 4일의 대호지면과 정미면(貞美面, 현 당진시) 천의리(天宜里)의 천의장터 만세시위 및 천의주재소 습격에 참여하였다. 서울과 전국 각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은 서산군에도 전달되었다. 서산군 대회지면에서는 면장 이인정(李寅正)을 비롯하여 면서기 김동운(金東云)·강태완(姜太玩)·민재봉(閔載鳳)과 면사무소 직원 송재만(宋在萬) 등이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이들은 인근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뒤 대호지면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거사일은 천의장터 장날인 4월 4일로 정하고, 사전에 면내의 각 리(里)별로 연락망을 구성하였다. 다수의 주민들을 만세시위에 참여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도로수선병목정리(道路修繕並木整理)의 건」이라는 공문을 각 마을에 보내 도로 보수를 위해 한집에 한명씩 4월 4일 면사무소로 모이라는 내용을 전달하였다. 4월 4일 아침 연장을 지참하고 다른 주민들과 함께 대호지면사무소 앞에 모였다. 면장 이인정 등으로부터 만세시위를 할 것이니 동참하라는 연설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받아 보고 이에 공감하여 바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선두에 대형 태극기를 앞세운 만세시위 대열에 다른 주민들과 함께 참여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천의장터로 향하였다. 천의장터에서는 정미면의 주민까지 합세하여 1,000여 명으로 불어난 군중과 함께 시장 곳곳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위를 전개하였다. 만세시위를 마무리하던 중에 만세시위 진압을 지원 나온 당진경찰서 경찰들의 발포로 여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이에 분노하여 다른 주민들과 천의주재소를 습격하여 주재소를 완전히 파괴한 후 다음의 제2차 거사를 기약하고 자진 해산하여 귀가하였다. 이날의 만세시위로 인해 대호지면으로 출동한 일제의 홍성(洪城)헌병수비대에 붙잡혀서 서산경찰서에 투옥되었다. 1919년 4월 24일 서산경찰서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태(笞) 90도(度)의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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