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성
兪鎭成1879. 1. 29 ~ 1949. 4. 1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성주군 성주읍(4.2)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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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79년 1월 29일 경북 금릉군(金陵郡, 현 김천시) 대덕면(大德面) 관기리(舘基里)에서 태어났다. 성주군(星州郡) 대가면(大家面) 옥화동(玉化洞) 소재의 교회에서 조사(助事)로 활동하였다. 1919년 4월 2일 성주 지역에서 교회·유림 세력과 연합하여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전국 각지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자 성주 지역의 교회세력을 규합해 연대할 계획을 세웠다. 1919년 3월 하순부터 여러 차례 주변 지역 교회 인사를 만나 만세운동 참여를 설득했다. 3월 28일 정오 김재곤(金在坤)·오의모(吳義模)·김학이(金鶴伊)·김석규(金錫圭) 등을 집으로 불러 모아 같은 해 4월 2일 거사를 도모하기로 결정하였다. 또한, 유림 세력인 송우근(宋祐根)·송회근(宋晦根) 등을 만나 4월 2일 거사 일정을 알렸다. 이들로부터 유림 세력을 동원하여 4월 2일 성주읍(星州邑) 시장에서 만세시위를 벌이고 시장을 행진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1919년 4월 2일 오후 1시 성주군 성주면 경산동(京山洞, 현 성주읍 경산리) 마을 관제묘(關帝廟) 뒷산에 올랐다. 이곳에서 오의모·이판성(李判成)·김치권(金致權)·김상직(金商直)·홍진수(洪鎭洙)·김석규·김학이 등 여러 사람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시위를 벌였다. 현장이 발각되면서 곧 일부 교회 간부 및 교인들이 붙잡혔으며 태극기는 압수되었다. 한편, 성주읍 시장에서 연대하기로 한 유림세력은 만세시위를 전개했으며, 3천여 명의 군중이 이에 호응하는 대규모 시위로 이어졌다. 이후 1919년 겨울 무렵 오형선(吳瀅善)과 자주 만나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한 방안을 모색했다. 1920년 4~5월 오형선이 세계와 일본의 동정과 독립을 다룬 문서 「국민해혹(國民解惑)」을 구하고 이를 토대로 동양의 평화를 위해 우리나라를 독립시켜야 한다는 취지의 「신한별보(新韓別報)」를 저작하였다. 이를 인쇄하여 배포 및 선전하기로 결정하였다. 같은 해 6월 경상북도 김천군(金泉郡) 대덕면 관기동 교회에서 송명옥(宋明玉)에게 「국민해혹」 2부, 김충한(金忠漢)에게 1부, 경남 합천군(陜川郡) 읍내에서 오윤선(吳允善)에게 2부를 배포하였다. 그러던 중 그 해 8월 의성군(義城郡) 비봉리(飛鳳里) 교회의 김충한에게 독립신문을 전달하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20년 11월 2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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