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海崙
海崙1883. 12. 2 ~ 1956. 3. 2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3년 12월 2일 충청북도 괴산군(槐山郡) 소수면(沼壽面) 몽촌리(夢村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2일 경권중(慶權重)과 함께 소수면의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소수면에서 일어난 최초의 만세시위는 면소재지인 길선리(吉善里)에서 100여 명의 주민들이 참여하여 ‘조선독립만세’를 외친 3월 20일의 만세시위였다. 이 만세시위는 괴산읍에서 괴산 장날을 이용하여 홍명희(洪命憙)와 이재성(李載誠) 등의 주도로 3월 19일 전개되었던 만세운동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일어났다. 이후 소수면에서는 몽촌리의 주민들을 중심으로 4월 2일 새로운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는데, 이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일제의 국권강탈 이래 식민통치의 강한 불만 속에서 나라의 독립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던 중, 독립을 위한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였다. 만세운동이 괴산 지역으로도 확산되어 3월 19일 괴산읍에서 대규모 만세운동이 전개된 사실에 고무되었다. 이에 새로운 만세운동 조직을 결의하고, 함께 만세운동을 조직할 동지 규합에 노력하였다. 4월 1일 몽촌리 마을의 구장으로 주민들에 대한 영향력이 컸고, 교류하고 있던 경권중을 찾아가 “내일 마을 주민들과 함께 경찰주재소로 가서 조선의 독립을 위한 만세를 외칠 것이니, 당신도 주민들을 지휘하여 함께 가자”고 권유하였다. 이와 같은 내용을 전해들은 경권중은 적극적으로 동의하여 만세운동을 함께 조직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후 경권중과 함께 마을 주민들에게 조선의 독립에 대한 만세운동의 취지를 설득하여 만세운동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4월 2일 독립의 필요성에 공감한 200여 명의 주민들이 만세시위에 동참하였다. 경권중과 함께 주민들을 지휘하여 시위 대열을 조직하고, 선두에는 만세시위에 참여한 송능식(宋能植)으로 하여금 대형 태극기를 들고 시위대를 선도하도록 하였다. 이에 경권중과 함께 만세시위대를 지휘하여 큰 목소리로 ‘조선독립만세’를 연창하면서 면소재지인 길선리(吉善里)로 행진하였다. 길선리에는 일제의 면사무소와 경찰주재소가 위치해 있었다. 오후 4시 경, 시위대를 지휘하여 소수면 면장 김승환(金昇煥)의 집으로 가서 다수 시위대의 위세로 면장 김승환도 만세시위에 참여하도록 압박하였다. 김승환이 어쩔 수 없이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에 합류하자, 그를 앞세우고 일제의 경찰주재소로 행진하였다. 주재소 앞에서 태극기를 치켜세우고, 시위대를 선도하여 ‘조선독립만세’를 힘차게 외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날의 만세시위 이후 경권중·송능식 등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혀 만세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23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 해 5월 1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마찬가지로 징역 10월 받았다. 재차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6월 12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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