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순
兪熙淳1876. 5. 16 ~ 1960. 3. 1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3월 옥구
- · 군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76년 5월 16일 전라북도 군산부(群山府) 개복동(開福洞)에서 태어났다. 기독교인으로 당시 군산부 강호정(江戶町)에서 잡화상(雜貨商)을 하고 있었다. 1919년 3월 5일 옥구와 군산 일대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옥고를 겪었다. 군산의 만세시위는 1919년 3월 초 영명학교의 교사였던 이두열(李斗悅)·김수영(金洙榮) 등과 군산 야소교병원(耶蘇敎病院) 사무원(事務員)이었던 안경태(安敬泰) 등이 주도하였다. 이들은 3월 6일 군산부 내의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벌이고자 영명학교 교내에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만들었다. 이때 안경태와 김수영 등의 권유를 받고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거사 계획이 사전에 발각되어 3월 5일, 이두열·김수영·박연세(朴淵世) 등 대부분의 주도자들이 일본 경찰에 끌려갔다. 이에 영명학교 학생 오한길(吳漢吉)·송기옥(宋基玉)·유복섭(劉福燮) 등은 마을 주민들 50여 명을 규합하여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부르짖으며 군산 시내로 행진해 나아간 뒤, 군산경찰서 앞에서 구속자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펼쳤다. 이때 시위대에 참여하여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군산경찰서 인근에서 시위를 이끌었다. 그러나 결국 시위대를 해산하고자 출동한 일본 경찰에게 붙잡혔다. 1919년 3월 31일 광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4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다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그 해 6월 12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석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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