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劉尙敦

尙敦

1874. 5. 18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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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劉尙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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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철산(鐵山)노령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철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21의형제
  • · 권업회
  • · 대한국민노인동맹단
  • · 북간도 국민회
  • · 동양혁명대의단

포상 정보

  • · 독립장(201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독립장(2011) 1874년 5월 18일 평안북도 철산군(鐵山郡) 여한면(餘閑面) 신포(新浦)에서 태어났다. 가명은 서택(徐澤)이고, 1921년 유철(劉鐵)로 개명하였다. 다른 이명으로 한자가 다른 유상돈(劉尙燉·劉相敦·劉尙頓)을 사용하였다. 1909년 평북 철산 등지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하다가 붙잡히기도 하였으며, 친일적인 벽동군(碧潼郡) 군수 오모(吳某)를 처단하고 붙잡혀 의주감옥에 갇혔다가 탈출한 뒤 러시아로 망명하였다. 일본 정부가 러시아 정부에 지속적으로 신병 인도를 요청하기도 하였다. 1911년 무렵 홍범도(洪範圖)·이범석(李範奭) 등 21명과 항일투쟁을 목적으로 한 결사 ‘21의형제’에 참여하였다. 이 단체는 탄압을 피하기 위해 표면적으로는 상호부조와 구제, 생활 습관과 가치관 개조를 표방하였다. 1911년 12월 17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러시아 당국의 공식 허가를 받아 한인 자치단체 권업회(勸業會)가 창립되자, 사찰부 부원(부장 홍범도)으로 선출되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일본 정부는 러시아 정부에 입적자 9명, 비입적자 21명 등 항일 애국지사 명단을 넘겨주며 추방과 인도를 요구하였다. 이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포함된 사실을 알고 동시베리아 야쿠치야 지역의 보다이보 금광으로 피신하여 1918년 무렵까지 노동하며 독립운동을 준비하였다. 1918년 8월 일본군이 러시아 극동지방과 시베리아에 침략군을 보내자, 러시아와의 국경지역인 중국 무링현(穆陵縣) 빠멘툰(八面屯)으로 옮겼다. 이후 중·러 국경에서 항일활동을 펼치던 홍범도·이윤(李倫)·전일(全一)·유동열(柳東說)·이범윤(李範允) 등과 연락하며 독립군 150~300명을 모집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난 이후에는 홍범도·이윤 등과 블라디보스토크로 옮겨 백인건(白仁健)의 집에 체류하면서 대한국민노인동맹단 창립과 회원 모집에 진력하였다. 노인동맹단은 46세 이상 70세까지의 노인들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에 매진하는 청년들을 지원할 목적으로 3월 26일 창립되었다. 1921년 1월 이만에 체류할 당시 유철(劉哲)로 개명하였다. 당시 이만에는 동생 유상업(劉尙業)과 징역 15년을 받고 의주감옥에서 함께 탈옥한 정벽(鄭璧), 훈춘에서 온 한경서(韓京瑞), 최재형의 아들 최파벨 등이 체류하고 있었다. 또 일본의 간도 침략을 피해 이동해 온 독립군 약 800명이 ‘사인발’이라는 한인부락에 주둔하고 있었다. 1921년 봄 일본군 점령 당시 친일화되었던 민회의 활동을 정상화시키는 데 기여하였고, 한인민회 회장을 지내다가, (음)3월경 사임하고 헤이룽장성(黑龍江省) 오지로 이동하였다. 이후 북간도 국민회 선전부장으로 활동하였다. 일제 측 자료에 따르면, 1922년 4월경 조선독립단 결사대 대장으로 이왕세자 부부의 암살을 계획하는 한편, 공산주의 선전활동에 협력하였다. 1924년에는 고려공산당의 후원과 이동휘(李東輝)의 지도로 조직된 동양혁명대의단 집행부장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행적은 확인할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반병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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