沈永信
永信1882. 7. 20 ~ 1975. 2. 16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인부인회
- · 재미한족연합위원회
포상 정보
- · 애국장(1997)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7) 1882년 7월 20일 황해도 송화군(松禾郡)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그러나 젊은 나이에 남편을 여의고 어린 아들을 데리고 하와이로 이주하였고,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던 조문칠과 재혼하였다. 1913년 4월 19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황마리아, 조매륜, 최엘리자베트 등과 함께 여성운동단체인 대한인부인회(大韓人婦人會)를 조직하였다. 대한인부인회는 한인사회의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며 자녀의 국어 교육 장려, 일본 용품 구매 거부 운동, 교회와 사회단체 후원과 재난 동포 구제 사업 등 다양한 운동을 전개하였다. 초대 회장에는 황마리아가 선출되었으며, 모금 활동에 그치지 않고 실업을 경영하는 등의 적극적인 재정 마련을 통해서 한인 사회의 애국여성운동을 이끌었다. 1919년 국내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하와이 각 지방의 부녀 대표자를 소집하는 부녀공동대회의 개최를 주도하였으며 이를 통해 조국의 독립운동을 후원하기로 결의하였다. 또한 만세운동의 영향을 받아 1919년 3월 15일 한인부인구제회(대한부인구제회)가 조직되었는데 이곳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한인부인구제회는 손마리아와 황마리아 등 하와이 각 지방의 부인대표 41명이 호놀룰루에 모여 독립운동 후원을 결의하고 같은 해 3월 29일 2차 대회에서 한인부인구제회를 결성하면서 조직되었다. 1920년 말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인 김구(金九)로부터 임시정부의 재정이 부족하다는 호소를 담은 편지를 받았다. 이 사실을 하와이 동포들에게 널리 알리고 임시정부 지원금 모집에 적극적으로 앞장섰다. 1935년 호놀룰루 지방 한인부인구제회의 법무 임원으로 선임되었고, 1936년에는 중앙부 부회장으로 선출되었다. 또한 1940년 한인부인구제회 중앙 부장을 맡았으며, 한국독립당 하와이총지부에서 일하는 등 지속적인 활동을 이어나갔다. 1941년 4월 21일에는 하와이에서 해외한족대회(海外韓族大會)가 개최되었는데 이때 대한부인구제회 대표로 참가하여 대회에서 조직된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의사부 위원으로 선정되었다. 이 대회는 미주지역 독립운동을 통일적으로 전개할 기반을 마련하기 위하여 미주 한인사회의 주요 단체인 총 8개 단체의 대표 15명이 참석들이 참석하였다. 이 대회를 통해 태평양전쟁기 미주지역 독립운동을 통일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7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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