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중식
兪中植1895. 2. 29 ~ 1971. 2. 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06)
관련 사건
- · 1919년 포천군 신북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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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6) 1895년 2월 29일 경기도 포천군(抱川郡) 영중면(永中面) 거사리(居士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으며, 3월 30일 포천군 신북면(新北面) 면사무소 부근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포천은 서울과 가까운 곳으로,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이 빠르게 전해지면서 3월 13일 포천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3월 말에 이르러 포천의 만세운동은 여러 면에서 대대적으로 전개되었다. 3월 24일 영중면 영평리(永平里)의 만세운동과 소흘면(蘇屹面) 송우리(松隅里)에서도 만세운동이 진행되었다. 이어서 29일 소흘면 무봉리(茂峰里)에서 또다시 1,000여 명의 만세운동이 있었고, 군내면(郡內面) 유교리(柳橋里)에서도 200여 명의 시위군중이 만세운동을 벌였다. 3월 29일 밤 집에 2통의 통문이 투입되었다. 그 내용은 “30일 오전 7시 포천군 신북면사무소 부근에 모여 조선 독립 만세를 부르고자 하니 인근의 많은 주민들과 함께 나오라”는 것으로 일종의 사발통문이었다. 통문을 읽고 다음날 전개될 신북면사무소 부근의 독립 만세운동에 참여하기로 결심하고, 즉시 같은 마을의 김수종(金秀鍾)과 양문리(梁文里)의 함병현(咸炳鉉)에게 각 1통씩을 교부하여 인근의 주민들에게 회람시켜 많은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하였다. 3월 30일 오전 7시경 함병현과 같이 집합 장소인 신북면사무소에 수십 명의 마을 주민들을 이끌고 나아가 2,000여 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날의 신북면사무소 앞 만세운동은 인접한 영중면과 일동면(一東面)·이동면(二東面) 등 여러 지역의 주민들이 함께 전개한 연합만세운동이었다. 만세운동이 점차 과격해지자 일제가 무차별 발포를 감행하여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시위대는 해산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5월 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자신의 행위는 조선 민족으로서 정의·인도에 근거하여 의사 발동한 것으로 범죄가 아니다”라고 무죄를 주장하며 상고하였으나, 그 해 7월 10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조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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