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진
金龜鎭1874. 3. 11 ~ 1943. 5. 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성주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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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6) 1874년 3월 11일 경상북도 성주군(星州郡) 초전면(草田面) 자양리(紫陽里)에서 태어났다. 서울의 만세 시위 소식에 자극받고 평소 친분이 있던 애국청년 배상윤(裵相潤)·서병준(徐丙俊)·노기학(魯基學)·김원술(金元述)·백성흠(白聖欽)·박경하(朴京夏) 등과 연락하여 4월 2일 성주면 장날에 만세 시위를 일으킬 계획을 수립하였다. 주모자들은 거사의 성공적인 수행을 위한 역할을 분담하고 만세 시위에 사용할 태극기를 준비하는 한편, 거사 소식을 마을 주민에게 알릴 책임자를 선정하였다. 한편, 초전면(草田面)의 송인집(宋寅輯) 등 송씨 일족과 월항면(月恒面) 대산리(大山里)의 이기정(李基定) 등 유림 세력, 대가면(大家面)의 옥화동(玉化洞) 교회 유진성 목사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인들도 4월 2일 성주면 장날 시위를 준비하였다. 이들은 계획 수립 초기에는 독자적으로 거사를 기획하였지만 이후 상호 협의하에 공동으로 만세 시위를 거행하기로 합의하고, 마을 주민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끌어냈다. 이 소식을 듣고는 이들과 함께 연합해 4월 2일의 만세 시위를 준비하였다. 4월 2일 성주면 장날 시위 주동 인물들과 함께 시장에 모였다. 오후 1시경이 되자 성주면 경산동(京山洞) 관제묘(關帝廟) 뒷산에서 약속한 대로 기독교인들이 태극기를 높이 들고 성주 시장을 향하여 독립 만세를 고창하며 행진하였다. 이에 시장 중앙에 모였던 60여 명의 유림도 독립 만세를 고창하며 호응하였고, 시장에 운집해 있던 수많은 군중도 순식간에 시위 대열에 합류하였다. 이를 본 경찰이 주도 인물을 체포하여 경찰서로 연행하자 3,000여 명으로 불어난 시위대는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고 경찰서와 군청으로 시위 행진을 이어나갔다. 시위 진압을 위해 대구에서 파견된 일본군 80연대와 경찰 등은 평화적인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적인 발포를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시위 참여자 2명이 순국하였고, 수백 명이 다쳤다. 시위대는 이에 굴하지 않고 밤 10시까지 시위를 지속하였다. 시위 중 체포되어 1919년 4월 2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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